민주 ‘노무현 정신 계승’ 태도변화 논란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노무현 지우기’ 나서며 철저한 수사 주장하더니…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3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검 중수부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고인의 장례 기간 전국 분향소에 모인 500만 조문객의 민심에 힘을 얻은 민주당이 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공세를 선언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 아닌가” 지적에 “선긋기는 일부 의원 개인의견에 불과” 반박
정세균, 李대통령 사죄-법무장관 파면 요구

국민장 기간에 공세를 자제해온 민주당의 예상된 강공이었다. 정작 이날 정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눈에 띈 대목은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그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2006년 전국 지방선거 참패 이후 노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급락하자 ‘노 전 대통령 색깔 빼기’에 공을 들였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고인에 대한 당의 태도에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은 반노(反盧), 비노(非盧), 친노(親盧)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다. 반노, 비노 진영은 공공연히 “노 전 대통령 그늘 아래서는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07년 2월 초 이들 의원 20여 명이 먼저 탈당했다. 같은 달 10일 탈당파 의원들의 워크숍에서 현 민주당 원내대표인 이강래 의원은 “노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 후보감이었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며 15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월 말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지만 이마저도 부족한 듯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기획 탈당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그리고 민주당 탈당파가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인사 중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노무현 때리기’를 선거 전략으로 삼기도 했다.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꾀하던 정 전 의장과 김 전 의장을 두고 ‘구태정치’라고 비판하자 이들은 “독선과 오만에 기초한 권력을 가진 자가 휘두르는 공포정치의 변종”(정 전 의장)이라거나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를 붙이고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식 분열정치”(김 전 의장)라고 반박했다. 손 전 지사도 그해 9월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해 “열린우리당을 문 닫게 한 장본인은 노 대통령이다. 제발 노 대통령은 대선판에서 한발 비켜서 계셔 달라”고 공박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선 긋기’를 시도했다. 올해 4월 초 노 전 대통령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에게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자 민주당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고 정치보복 성격이 짙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상 ‘노무현 지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관측이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노무현 정신’을 들먹이는 것은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의 정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지적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분당 및 통합 과정이나 2007년 대선,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참여정부의 공과(功過)를 짊어지고 가겠다”고 밝혔고, 당 차원에선 공식적으로 ‘노무현 지우기’를 하지 않았다는 게 민주당 측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선 긋기를 한 것은 일부 의원의 개인적인 행태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지우기’에서 ‘노무현 계승’으로 급작스럽게 전환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한 재선 의원은 “지역균형발전, 남북평화번영,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 등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진정성을 의심한 적은 없다. 문제는 그의 발언과 행태였다”며 “지난 장례 기간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경우엔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정 대표는 그동안 다른 의원들처럼 노 전 대통령 색깔 빼기에 나선 적이 없다. 따라서 그가 ‘노무현 정신 이어가기’를 말하는 것은 전혀 위선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정 대표의 이 대통령 사죄 요구에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민주당 전·현 인사들의 ‘노무현과 선긋기’ 발언▼

●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불행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어떤 연유로 이것을 받게 됐는지 명백한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 특히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자살사건 부분에 대해서도 정중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2009년 4월 8일 송영길 최고위원)

● “정세균 대표와 친노로 상징되는 당 간판의 전면 교체가 필요하다. 노무현 색깔 빼기 없이는 민주당의 희망은 없다.”(2009년 4월 10일 이종걸 의원)

● “참여정부 총리 및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원내대표 출신은 총선 불출마를 포함한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의종군해야 한다.”(2007년 12월 26일 대통합민주신당 문병호 의원)

● “이번 선거는 결국 노무현이 싫다는 것이었다.”(2007년 12월 21일 대통합민주신당 지도부회의)

● “열린우리당을 문 닫게 한 장본인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민주신당 당원도 아니다. 제발 노대통령은 대선 판에서 한발 비켜서 계셔 달라.”(2007년 9월 2일 손학규 후보 기자간담회)

●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적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각각의 정치 세력이 논쟁과 실천을 하는 것을 구태정치라 부른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야말로) 독선과 오만에 기초한 권력을 가진 자가 휘두르는 공포정치의 변종이다.”(2007년 5월 8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 “김근태가 구태정치를 한다고 공격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를 붙이고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식 분열정치다. 당 해체를 주장할 거라면 나가라고 하는데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적이 없는 대통령은 자숙하라.”(같은 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 “노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 후보감이었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문제점은 반복적인 말실수, 코드 인사, 인재풀의 한계, 고집 오만 독선, 편 나누기, 뺄셈의 정치, 싸움의 정치 등이다.”(2007년 2월 10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워크숍에서 이강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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