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명분 국밥 끓이고… 쓰레기 줍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봉하마을 - 대한문 앞 분향소

조문 왔다 수백명씩 자원봉사


전국 곳곳에 설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많은 시민이 자원봉사에 뛰어들면서 침울한 분위기에 감동과 활력을 주고 있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7만 명분의 쇠고기국밥을 끓여 조문객들을 대접하고 잔반 처리를 도맡고 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임시분향소에도 헌화하러 왔다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이 많았다.

봉하마을에 천막까지 치고 자원봉사에 나선 주부 이향희 씨(47).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세 살배기 막내아들도 데려왔다. 26일 만난 이 씨는 조문객들이 먹고 난 음식을 치우느라 오후 2시가 넘도록 점심식사도 못했다. 그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도 아닌 평범한 주부였지만 노 전 대통령을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던 유일한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진영 새마을부녀회 총무 김진옥 씨(52)는 이날 7만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쉴 새 없이 국밥에 들어갈 무를 썰었다. 매운 무를 몇 시간째 잡고 있느라 손은 퉁퉁 붇고 물집까지 잡혔다. 큰 솥단지 10개에 들어가는 무만 1.5t 트럭 한 대 분량이다. 김 씨는 “점심은 빵으로 때웠다”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김해 문화의집 자원봉사회 회장인 한순혜 씨(47)는 뙤약볕 아래서 줄을 서 있다 분향소에 도착한 조문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다.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한 이날 오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침울한 표정으로 서있는 조문객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나르던 한 씨는 “이렇게 많은 손님이 찾아왔지만 노 전 대통령이 없는 봉하마을이라 마음은 허전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매일 수만 명의 조문객이 찾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에도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바쁘게 뛰고 있다.

대한문 앞 분향소 곳곳에 “국화는 무료제공, 사지마세요”라는 피켓을 내걸어 잡상인을 통제하고 있다. 늦은 시간인 오후 10시부터는 “초중고교생이나 아이들과 함께 오신 분은 먼저 조문할 수 있도록 해드립니다”란 푯말을 들고 조문객 사이를 돌아다니는 봉사자도 있다.

26일 오전 헌화하려 왔다가 “매직 글씨 잘 쓰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현장에서 봉사자로 등록한 대학생 이모 씨(26)는 시청역 주변 쓰레기를 주우며 “조문객들 때문에 거리가 더러워지면 결국 고인이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김해=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