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맞은 곽승준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언론에 일방적 공개로 혼선… ‘회심의 카드’ 결국 좌초

‘오후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법제화로 상징되는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처음 제기했던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는 인적 자원 육성을 위한 ‘휴먼 뉴딜’ 차원에서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지난달 24일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 일각에서 “사전 협의 없는 독주”라고 비판했지만 그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이주호 교과부 제1차관 등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사교육비 대책을 밀고 나갔다. 사실 사교육비 대책은 정권 출범과 함께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가 물러났던 그가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복귀한 뒤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다.

당정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방안을 밀고 가려 했던 그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 ‘복병(伏兵)’을 만났다.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권영진 의원 등이 반대하고 나섰고 한 달 동안 논란이 됐던 ‘학원심야 교습 금지’는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법제화는커녕 단속도 각 시도가 ‘알아서’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게다가 이날 당정이 합의한 내용에는 곽 위원장이 24일 언급했던 사교육비 경감안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곽 위원장이 여당 정책위의장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곽 위원장과 임 의장은 같은 경제 정책통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시절부터 ‘경쟁’을 해왔던 관계이기도 하다. 이날 곽 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중에 얘기하자”고만 했다.

곽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각종 공약과 정책을 만들어낸 정책 참모이자 측근으로 분류된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인 곽 위원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분과위원을 거쳐 초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의 여파로 지난해 6월 물러났지만 곧바로 장관급인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내락될 정도로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곽 위원장의 다소 현실을 앞서가는 아이디어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때도 있다는 지적이다. 곽 위원장이 내놓은 사교육 대책 취지와 달리 당정청 간 정책 혼란으로 비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곽 위원장이 교과부 실무진과의 논의를 거쳐 ‘오후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하는 사교육비 경감 초안을 만들었지만 언론 공개 과정에서의 미숙함으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서 “소득도 없이 지난 한 달간 여권 전체에 혼란만 야기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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