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교육정책 혼선 빚자 긴급조율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 정부 사교육비 절감방안 ‘곽승준 구상대로’

곽위원장, 李대통령 질책후 이주호차관 만나

박재완 수석과도 심야 회동… 절감안 밑그림

‘언행은 언행, 정책은 정책’ 李대통령 의지 확인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방안이 30일 마련됐다. 이로써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느닷없이 사교육비 절감안을 언론을 통해 주장하면서 불거진 정부 내 정책 혼선과 갈등은 일단락됐다. 》

○ 정책 혼선, 청와대가 직접 조율

곽 위원장의 돌출 행동으로 촉발된 사교육비 절감 방안 혼선은 일주일 만에 정리됐다. 곽 위원장은 24일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학원이 밀집해 있는 ‘빅3(대치동, 중계동, 목동)’와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여러 가지 개혁방안을 들고 나왔다. 사전에 통보조차 받지 못한 청와대와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는 “왜 미래기획위원장이 나서 설치느냐”며 못마땅해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곽 위원장을 향해 “자중하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민주당에선 “교육부통령이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대통령수석비서관들 사이에서도 “대통령 자문기관의 장이 집행기관의 장처럼 행동하느냐”며 곽 위원장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주류였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내용에 대한 논란은 간 데 없고 곽 위원장의 ‘튀는 행동’이 논란거리가 된 것이다.

이는 최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시기를 둘러싼 외교통상부와 통일부의 이견,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둘러싼 당정 갈등 등 정부 내 정책 혼선이 잇따르자 이 대통령이 직접 ‘치밀한 정책조율’을 지시한 직후 터진 것이어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이번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곽 위원장을 질타했다. 사전 조율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정책을 공개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이후 청와대와 미래기획위, 교과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곽 위원장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이날 오후 시내 모처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사교육비 절감안의 대강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도 이날 밤 곽 위원장을 만나 사교육비 절감안을 조율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관계부처 차관 등이 모여 정부안을 잠정 확정했다. 결국 이 대통령의 따끔한 지적이 나온 뒤 청와대가 앞장서 발 빠르게 정책 조율을 한 사례로 남게 됐다.

○ 이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 재확인

이번 정부안 마련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정부 내 논란이 됐던 개혁안을 당초 예정한 일정대로 그대로 진행하도록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올해는 반드시 교육개혁을 이루겠다”고 밝힐 정도로 교육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이 교육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오렌지를 ‘아륀지’라고 발언한 것을 둘러싼 논란 등 섣부른 ‘영어몰입교육’ 도입을 추진하려다 역풍을 맞은 뒤 주춤하고 있는 교육개혁을 이번에는 제대로 시작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는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이날 마련된 사교육비 절감 정부안은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최종안이 확정되기까지는 당정협의라는 절차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측근들이 사교육비 문제만은 반드시 이 정권에서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어 사교육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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