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폭력도 헌법으로 보호하다니…”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2분


■ 국회 인턴 이수철 씨가 본 ‘철밥통 국회의원’

“처벌강화” 국회법 개정작업 곳곳서 “위헌소지” 제동

“의원권리 지켜줘야 하지만 역할 제대로 하는지 의문”

국회 인턴(입법보조원) 이수철 씨(25)가 ‘국회의원 때리기’에 나선 건 2월부터다. 지난해 충북대를 졸업한 뒤 올해 1월부터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실에서 일하게 된 그에게 처음 떨어진 과제가 ‘국회법 개정안 마련’이었다. 특히 의원 윤리와 관련된 규정을 대폭 바꿔보라는 요구였다. 물론 이 씨의 일이란 나 의원과 실무 보좌관들이 주문하는 대로 자료를 찾고, 출력하고, 전화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지탄을 받는 국회의원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일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큰 사명감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이 씨는 허탈하다. 19쪽짜리 ‘국회 질서유지제도’ 보고서를 만드는 등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6일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당초 나 의원실에서 기획했던 작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위헌 시비와 법률적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회의장을 점거해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별로 없더군요.”

나 의원실이 의도했던 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를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하고 의원들에 대한 징계의 종류와 수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것이었다. 이 씨는 이와 관련한 12개 개정 항목을 들고 국회 법제실을 찾아 법체계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 그러나 이 중 7건이 위헌소지가 있거나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윤리특위 소위를 외부인사로 구성해 의원 간 ‘제 식구 감싸기’를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는 ‘헌법 41조에 따라 국회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소위도 당연히 국회의원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해석에 막혔다. 이 때문에 외부인사로 구성된 소위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특위 전체회의가 소위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개정안 조항도 줄줄이 삭제됐다. 이 씨는 “17대 국회 윤리특위에서 82건의 의원 징계 관련 안건을 심사했지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끼리 서로 봐주는 게 관행처럼 돼 있지만 국민들은 이제 이 관행을 봐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 의원실은 또 국회 폭력사태 등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고발을 하며 정쟁을 벌이다 나중에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구태를 차단하기 위해 ‘무고자 처벌심사 조항’을 신설하려 했다. 그러나 ‘무고자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법제실의 주문으로 이 또한 삭제됐다. ‘의장실 점거 시 출석정지 3개월’ 등으로 사안마다 징계 종류를 구체화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국회법은 내부 절차법이기 때문에 형법과 달리 징계 종류와 수위를 명시할 수 없다’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제실은 엄격한 법리적 판단에 따라 법안 초안을 심사한다. 하지만 이 씨에겐 의원들의 권리가 그만큼 단단히 보호받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 씨는 “국회에 들어와 보니 열심히 하는 의원들도 많고, 국회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의원의 권리는 최대한 보호해야 하지만 지금 국회가 국민을 대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400여 쪽의 윤리규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회의 윤리규정은 20개 조항에 불과하다. 윤리특위 전체회의는 지난해 말 ‘해머 사태’에 가담한 의원들을 9일 징계하려고 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불참하는 바람에 회의를 열지도 못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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