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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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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도 분쟁지역화’ 집요한 추진과 대조
주미대사관 사실파악후 뒤늦게 4개항 질문
‘명백한 한국영토’ 조용한 외교에 변화올 듯
미국의 연방정부기관인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최근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으로 분류함으로써 독도는 졸지에 주인 없는 섬으로 전락했다.
또한 이번 결정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집요한 로비활동이 주효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여서 한국 정부가 그동안 내세워 온 독도 외교의 허점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낸 셈이 됐다.
▽‘주인 없는 섬’으로 전락한 독도=독도에 대한 ‘주권 미지정’ 분류는 단순한 독도 명칭 표기의 차원을 넘어서 독도 문제를 영유권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일본의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BGN은 미국 정부가 ‘독도(Tok Island·Korea)’라는 명칭 대신 ‘리앙쿠르 록스’라는 지명을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한 시기는 1977년 7월 14일이라고 최근 확인했다. 일본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장기 플랜’을 갖고 치밀하게 움직여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주권 미지정’ 분류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1977년의 결정에 따라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차원의 단순한 행정적 조치를 취했을 뿐이며 외국의 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이번 조치로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독도의 BGN 표준지명인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의 첫 번째 다른 명칭(variant)의 종전 순서를 바꿔 일본식 지명인 ‘다케시마(Take Sima)’를 ‘독도(Tok-to)’보다 앞서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리앙쿠르 록스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의 이름을 딴 명칭으로 일본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홍보해 온 명칭이라는 점에서 일본 외교의 승리라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홈페이지에서 독도가 한국에 속한 도서가 아닌 주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라는 한국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한국에 일언반구 사전통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뒷북 치는 한국 외교=독도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한국 외교는 허둥지둥 응급처방에 급급했다는 점이 이번 ‘주권 미지정’ 분류에서도 확인됐다.
이달 16일 미국 의회도서관이 북미 도서관 주제명표 편집회의에서 독도라고 돼 있는 주제명표를 ‘리앙쿠르 록스’로 변경하려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주미 한국대사관은 부랴부랴 외교 경로를 통해 4개항의 질문을 던졌다.
그 내용은 △독도의 공식지명이 리앙쿠르 록스로 바뀐 시기 △그 이전까지의 공식 지명 △BGN 명칭 변경 결정의 기속력 여부 △독도라는 표기를 고수하기 위한 공식채널 개설방법 등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지난 주말에야 대사관 측 인사와의 면담에서 ‘독도’라는 명칭 대신 ‘리앙쿠르 록스’라는 지명을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한 시기는 1977년 7월 14일이라는 내용 등을 확인했다.
또 BGN의 결정은 행정부나 지명 사용의 일원화를 위한 권고사항일 뿐 법적인 기속력은 없다는 답도 들었다.
하지만 당시 대사관 관계자는 레오 딜런 국무부 지명과장대리와 렌덜 플린 BGN 사무국장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통보받으면서도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사관 관계자는 “이들과의 만남이 있은 뒤 BGN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귀속 국가가 ‘한국’에서 ‘주권 미지정’으로 수정돼 있었다”며 “이런 수정 조치는 지난주 금요일경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워하는 정부=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문자 그대로 ‘자의반 타의반’ 독도문제를 미국 정부에 정식 제기했다.
주한 미국대사관도 이 문제를 정무과에서 다루도록 했다. 그동안 홍보과나 의회과 차원에서 다루면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미 간 ‘협상’의 영역이 아닌 명백한 한국의 영토라는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온 것.
정부 당국자는 “한국이 정무적 문제 차원에서 이 문제를 미국 정부에 정식으로 들고 나온 것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겠다는 일본의 치밀한 의도에 결국 말려든 꼴”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1977년에 이미 ‘리앙쿠르 록스’로 개명한 뒤 업데이트를 미뤄온 미국 정부를 행동에 나서게 한 것이 결국 누군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지명위원회(BGN)
미국 내 지명을 통일시키기 위해 1890년 설립된 연방기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관련법이 제정된 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BGN은 당초 미국 남북전쟁 이후 본격적인 개발 시기에 복잡한 지명을 통일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미국 국내뿐 아니라 외국 지명, 해저 지명 등도 함께 공포한다. BGN에서 외국 지명 표기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면 미 연방정부는 물론 산하기관, 공공기관에서 따르도록 돼 있다. BGN은 미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국토안보국, 상무부, 농무부, 내무부, 미 의회도서관 등 10여 개 부처에서 파견한 위원들로 구성돼 운영된다. 위원장은 현재 CIA 소속인 그레고리 보턴 씨가 맡고 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