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피격’ 7일째…北 입에 휘둘리며 갈팡질팡

  • 입력 2008년 7월 17일 02시 56분


北 협조거부에 속수무책

조사단 발표 알맹이 없어

현대아산도 ‘주장전달’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16일로 발생 6일째를 맞았지만 정부와 현대아산이 진상 규명에 진전을 보지 못한 채 가해자인 북한의 ‘입’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있다.

정부는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 당국의 ‘통민봉관(通民封官·한국 당국을 제치고 민간과만 대화)’ 전술에 막혀 민간 기업인 현대아산에 귀동냥을 하는 처지다. 현대아산은 안전관리 소홀의 책임이 드러난 데 이어 진상 규명 과정에서도 사실상 북한 측 주장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이날 피해자 박왕자(53) 씨 부검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박 씨가 두 발의 관통총창(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간 상처)을 입어 간과 폐 등 장기 손상과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동조사단은 “현장조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신과 옷 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총격 거리 △총격 당시의 피해자 상황 △가해자 수 등 진상 규명에 필수적인 핵심 쟁점은 사실상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15일 오후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을 면담한 뒤 “새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정부는 12일과 15일 모두 여섯 차례 판문점을 통해 북한 측 연락관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진상 규명을 위한 당국 간 대화를 촉구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윤 사장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 씨가 숙소인 비치호텔을 출발한 시각이 “당초 알려진 오전 4시 31분보다 13분 빠른 오전 4시 18분”이라고 정정했다.

현대아산 측은 “호텔 폐쇄회로(CC)TV의 시간이 실제보다 12분 50초 빠르게 잘못 설정돼 있었다”고 해명했다. 진상 파악의 핵심 단초가 될 결정적인 시각을 틀리게 발표하고 6일 동안 정정하지 않아 국민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윤 사장은 또 “박 씨가 군사경계구역을 알리는 펜스를 넘어 800m 지점까지 진입했으며 군인의 저지로 500m 도망친 지점에서 총에 맞았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벌어진 11일 오전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전화를 모두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11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동안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30회선 중 현지 현대아산 사무실 전화를 제외하고는 모든 회선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다른 우방에서도 이번 사안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국제 공조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USA’를 통해 “북한이 합동조사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한국의 방침을 미국도 같이하고 있다”고 지지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영상취재: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안전보장 없인 금강산관광 재개 못해

독도 정략적 대응땐 日의도 말려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임무 중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조사와 재발방지대책, 관광객 신변안전을 위한 확실한 보장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 모두 막대한 대북지원을 해왔다”면서 “금강산 관광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북한을 돕겠다는 선의로 가는 것인데 비무장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케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국가적,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우리 정치권이 이 문제에 정략적으로 대응한다면 결국 한국의 국론 분열을 노리는 북한과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에 대해 “일본이 장기적 전략적으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의도하에 한 가지씩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단기적 임기응변식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노동계의 7, 8월 대규모 파업 움직임에 대해선 “기업도 법을 어기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노조도 불법 정치파업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면서 “(파업 후 기업이) 위로금으로 보상해 주는 종전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 영상취재: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이진아,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변영욱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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