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사실상 재협상…무책임하게 얘기못해”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청와대로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쇠고기 논란 타개를 위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파 관음종 총무원장, 지관 원장, 이 대통령, 운산 태고종 총무원장, 회정 진각종 통리원장. 이종승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청와대로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쇠고기 논란 타개를 위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파 관음종 총무원장, 지관 원장, 이 대통령, 운산 태고종 총무원장, 회정 진각종 통리원장. 이종승 기자
지관 스님“쇠고기 재협상으로 군중심리 차단을”

이명박 대통령은 6일 불교계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연 간담회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는 엄청난 후유증이 따른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위기 모면 위해 재협상 얘기하면 엄청난 문제 생겨”=이날 모임은 ‘쇠고기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각계 원로들의 조언을 구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쇠고기 문제가 최근 정국의 발단인데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게 건강”이라면서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재협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지관 스님은 특히 “군중심리는 한번 뭉치면 합리적인 설득이 잘되지 않으니 빨리 차단해야 한다”면서 “그 방식은 진흙땅에 풀을 덮듯이 해야 한다”며 이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각종 통리원장인 회정 정사도 “재협상을 주장하는 측의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 같다”면서 “어쨌든 재협상 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재협상 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통상(通商) 국가인데 지금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 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 상품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그런 후유증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이를 모면하기 위해 재협상하겠다고 무책임하게 얘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야당 내부에서도 지금 (재협상 문제에 대한 의견이) 반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면서 “문제의 핵심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한미 양국 업계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 수출하지 않겠다는 자율규제 결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사실상 재협상과 다름없다. 미국에서도 우리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문제를 푸는 데 적극 협조하고 있다”면서 “과거 일본이 자동차 교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율규제에 합의하면서 문제를 풀었다”고 소개했다.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한 원로는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간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그런데 왜 그런 설명을 국민에게 충분히 하지 않느냐. 홍보가 부족한 것 같으니 국민에게 적극 알리라”고 말했다.

다른 원로는 “옛말에 소나기는 피하라는 말이 있다. 해를 비춰서 국민의 외투를 벗기는 그런 정책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원로는 “지금 상황은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 같은 느낌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 국민이 국제규범이나 사회규약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으니 적극 홍보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 스님은 “촛불시위가 처음에는 쇠고기로 시작했는데 다른 세력이 자꾸 가세하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관 스님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 많으니 보류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하자 “쇠고기 문제는 국제적 통상 문제이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말할 수 없지만 대운하는 충분히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며 재검토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참으로 불신의 시대다”=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은 “시중에 수도를 민영화한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으니 참으로 불신의 시대”라고 말을 꺼내자 이 대통령은 “그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이에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요새는 세 살만 돼도 인터넷을 할 줄 아니까 정부가 여론을 이끌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최근 며칠간 현승종 전 국무총리, 안병만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면서 “앞으로도 종교계, 학계, 정계 원로들을 두루 만나 민심수습을 위한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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