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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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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現국회 비준 못하면 처음부터 재심의 ‘발등의 불’
부 동 산 거래세 곧 인하… 종부-양도세 완화도 본격 추진
금산분리-수도권규제 완화 등 이견 첨예한 사안은 진통 예상
《“쇠고기 시장 개방이나 대운하 같은 인화성 높은 정책은 총선 이후에나…. 그때까진 정부 입장이 없어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 달여 동안 관료들은 민감한 경제 현안에 대해 이처럼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부처 업무보고 때도 금융 소외자 지원대책처럼 득표에 유리한 정책만 내놨다.
총선이 끝나면서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규제개혁과 감세(減稅) 등 큰 방향만 정한 채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지 않았던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한편 미국산 쇠고기 수입기준 완화, 대운하 사업 추진 등 여론을 의식해 언급을 꺼려온 정책 현안들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그동안 사석에서 “총선 후 개혁정책을 서둘러 처리하겠다”고 말해왔다.》
○규제개혁 및 감세 본격 추진
총선 후 추진될 정책 과제는 대부분 18대 국회가 시작되는 5월 30일부터 법 제정 및 개정 작업을 거친다.
이 중 규제개혁과 감세는 연 6%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정책, 통화 및 재정팽창 등 인위적인 부양책을 쓰면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민간의 투자심리를 살리는 쪽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려는 것이다.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6월 임시국회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위해 9월 정기국회 때 은행법 및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현재 확정된 규제개혁 과제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정도뿐”이라며 “이제 본격적으로 (규제를) 풀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감세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당시 공언한 ‘근본적 조세개편’의 핵심. 법인세, 소득세, 소비세 등 세제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특히 재정부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상속세 폐지 주장과 관련해 “조세개편 때 이 문제도 들여다볼 것”이라며 상속세 완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시급한 한미 FTA 비준
규제개혁과 감세정책은 중요하지만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안.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은 ‘긴급 현안’에 속한다.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협상타결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심의해야 한다. 한국이 먼저 비준안을 통과시켜 미국 의회의 비준을 촉구하려던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미 FTA 비준과 직결돼 있는 문제가 총선 이틀 뒤인 11일 전격 재개하는 한미 쇠고기 협상. 정부 관계자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방미 기간에 대통령이 한미 FTA와 관련해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양국 정상 간에 ‘FTA 조기 처리’의 원칙적 합의조차 만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운하 사업은 그동안 경제적 효과와 환경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논의 자체를 보류한 상태. 이제는 국민적 합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사업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대운하 전도사 역할을 해온 이재오 의원이 낙선했고 대운하에 부정적인 친박 계열이 대거 당선된 만큼 청와대가 상황을 봐가면서 공론화 여부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 ‘뜨거운 감자’ 부동산 제도 손질
부동산 거래세인 취득·등록세가 조만간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취득·등록세는 올해 초 현행 2%인 세율을 1%로 내리기로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보전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아직 세율이 그대로다. 현재 지방소득세를 신설해 지자체에 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6월 이전에 세율을 내리는 방향으로 지방세법이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는 부과 대상을 현행 공시가격 6억 원 이상인 주택에서 9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또 서울, 경기 과천과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1신도시 1가구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면제 조건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3년 보유, 2년 거주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2년 거주요건을 없애 일반 지역처럼 3년만 보유하면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이다.
재건축 제도는 사업 절차를 단축해 주택공급에 걸리는 기간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이 추진된다. 하지만 소형평형의무비율과 임대주택의무비율 등 주요 재건축 관련 규제는 당장 풀기 어렵다.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 한나라당, 재정부 내부에도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하면 다른 개혁정책들을 추진하기 힘들어진다’는 공감대가 있어 획기적인 제도 변화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순 없다’
경제정책 현안 중 공기업 민영화, 부동산 거래세 인하 등은 여야가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야다. 반면 쇠고기시장 전면 개방, 종부세 등 부동산 규제 완화, 수도권 규제 완화, 환경규제 완화, 금산분리 완화 등은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 법 개정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이처럼 민감한 정책을 법제화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경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리되 ‘큰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보하는 것이 정책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