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 ‘밑그림 그리기’ 두 달 장정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지난해 12월 30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현판 왼쪽)과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현판 오른쪽)을 비롯한 인수위원 등이 인수위 현판식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2월 30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현판 왼쪽)과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현판 오른쪽)을 비롯한 인수위원 등이 인수위 현판식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새 정부 출범을 1주일여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노무현 정부의 소관부처별 주요 업무에 대한 ‘인수’를 사실상 마치고 ‘이명박 정부’의 장관 대통령수석비서관들에게 ‘인계’하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좌파 성향 정부 10년 만에 우파 정부로의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50여 일간 ‘예비정부’ 역할을 해 온 인수위의 그간 활동을 점검해봄으로써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 본다. 아울러 인수위를 중심으로 포진했던 새 정권 주체세력들의 향후 역할과 진로를 분야별로 나눠 살펴본다.》

‘전봇대’ 뽑기로 규제완화 로드맵 마련

■ 입안한 주요 정책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해 말 출범 직후부터 주요 정책 과제를 빠른 속도로 내놓으며 새 정부 국정 운영의 화두를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그 핵심은 ‘경제 살리기’를 축으로 하는 규제 개혁, 공교육 강화 등의 프로그램으로 요약된다.

인수위는 우선 각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 방식부터 바꿨다. 부처의 현안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하루 종일 걸렸던 과거의 보고 방식 대신 수 시간 내에 당선인의 핵심 비전과 공약을 해당 부처가 어떻게 이행할지를 서로 조율하는 데 집중했다. 하루에도 여러 부처를 상대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부처 업무 보고는 8일 만에 종료됐다.

인수위는 1월 16일 이 당선인의 최대 역점 과제 중 하나인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출범 20여 일 만에 내놓은 개편안은 현 18부 4처의 중앙 행정 조직을 13부 2처로 줄이고, 일반 공무원(교원 경찰 교정직 제외)의 5.3%인 6951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당선인은 ‘이명박식 경제 개혁’을 위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정부조직 개편→규제 완화→기업의 투자 활성화→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경제 살리기 프로그램의 첫 단추라는 것이다.

발표 당시 일각에서는 개편안이 너무 촉박하게 마련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개편안을 주도한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인수위 출범 전부터 관련 자료와 보고서를 수집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년가량 준비한 셈”이라고 밝힌 바 있다.

1월 22일에는 이 당선인의 핵심 교육 공약인 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 방안이 공개됐다. 1단계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 보완, 대입자율화 조치, 대학책무성 강화 조치 등을 추진한 뒤 수능 과목 축소(2단계) 학생 선발권 대학 이양(3단계)을 단계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수능 과목에서 영어를 빼는 대신 학생용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도입하기로 해 교육계의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인수위는 영어평가시험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영어 사교육 광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1월 30일 영어 전용 교사 2만3000명 신규 채용 등을 골자로 하는 영어 공교육 강화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새 정부 5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할 규제 완화 로드맵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당선인이 1월 18일 이른바 ‘대불공단 전봇대’로 상징되는 각종 정부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본격화됐다.

인수위는 그동안 경제계 현장에서 거론한 ‘덩어리 규제’뿐만 아니라 관광, 서비스산업 등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신성장동력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등도 적극적으로 찾아 그 존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수위는 5일에는 그동안의 활동 결과를 모아 새 정부가 추진할 5대 국정지표와 그 실행방안을 구체화한 21대 국정 전략목표, 192개 세부 국정과제를 선정해 이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5대 국정지표는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 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이며 192개 국정과제는 다시 43개 핵심과제, 63개 중점과제, 86개 일반과제로 분류했다.

인수위는 이와 별개로 규제개혁, 기후변화, 해외투자 활성화, 해외투자 유치,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한 특별 정책과제를 선정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영어 몰입 교육’ 거센 반발에 “없던 일로”

■ 역풍 만난 주요 정책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일부 정책에서 아마추어적인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설익은 발언으로 오해를 사거나 내부 조율에서 엇박자를 냈다. 한나라당조차 ‘오버’하지 말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잇단 시행착오=이경숙 인수위장은 지난달 22일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영어 몰입 교육’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영어 이외의 일반 과목도 영어로 수업할 수 있다고 말해 거센 반발을 산 것.

인수위는 일주일 만에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물러섰지만 영어 교육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통신비 인하 방침은 의욕만 앞섰던 사례다. 인수위는 “휴대전화 통신요금을 20% 낮추겠다”고 공언했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예전처럼 기업들의 팔목을 비틀어 강제로 인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는 장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지분형 분양주택 도입방안’은 뒷마무리가 개운치 않았다. 아파트를 실거주자와 투자자에게 쪼개 판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빠져 있었다. 인수위 내부에서도 “다소 엉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유소 판매가격 공개’도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라는 지적이다. 인수위가 4월부터 전국 주유소 가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히자 주유소 업계는 “고유가 책임을 영세 소매업체에 떠넘기는 처사”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하는 ‘시장친화적’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인수위는 검찰, 경찰, 노동부 등이 ‘산업평화정착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불법 집단행동에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내부 조율이 안 돼 거둬들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말 그대로 정권을 인계받는 과도기적 조직이기 때문에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었던 2003년에는 인수위가 ‘재벌 개혁 방안’ 등을 남발하면서 재계와 갈등을 빚었고 결과적으로 이후 5년 내내 기업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민생 정책’ 소홀 논란=인수위의 방향 설정이 대기업과 성장 위주 정책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인수위가 마련한 국정과제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장애인 고용 할당제, 육아휴직 급여 상향 조정, 약값 인하 등 민생 관련 주요 공약들이 빠졌다. 반면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은 최우선 과제로 책정돼 대조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인수위 측은 “철학과 방법론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취약 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집착하기보다 성장률을 높여 과실을 분배하는 구조를 택하겠다는 것.

또 5대 국정지표 중 하나를 ‘능동적 복지’로 삼았듯 경제가 활성화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무조건 정부만 쳐다보는 ‘천수답식 복지’ 수요가 줄어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자칫 성장과 복지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반론도 여전하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가처분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둔화되고 시차(時差)로 인해 체감 경기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책 논의 과정까지 세밀히 기록▼

■ 인수위 백서 뭘 담나

“잘된 것 잘못된 것 다 담겠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 기록을 담아 새 정부에 인계할 책임을 맡고 있는 백성운 행정실장은 15일 인수위 활동백서의 제작 방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백 실장은 “15대, 16대 대통령직인수위의 백서에는 인수위 활동의 최종 결과물만 취합돼 있어 국정운영에 참고할 게 별로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책 결정 과정을 생략하고 자료 나열에 그친 15대, 16대 백서와는 달리 17대 인수위 활동 백서는 최종 결과와 함께 분과별 정책 논의 과정 전반을 수록하고 있다. 심지어 인수위의 일일 활동 스케치도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7대 인수위 백서는 총 2권으로 나뉘어 발간될 예정이다. 1권에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과 핵심 정책 과제 등 인수위 활동 결과가 수록되고 2권에는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주요 이슈들을 현장감 있고 생생하게 담을 계획이다. 백서는 가제본 발간 뒤 세부 교정을 거쳐 3월 24일에 발간된다.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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