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쌓였는데 출장중…외출중…나랏일 제친 ‘말년 장관들’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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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토론을 위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통폐합 부처인 통일부의 이재정 장관(오른쪽)과 정보통신부의 유영환 장관(등 보이는 사람) 등 참석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토론을 위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통폐합 부처인 통일부의 이재정 장관(오른쪽)과 정보통신부의 유영환 장관(등 보이는 사람) 등 참석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장관’들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가 심상치 않다. 어떤 장관은 국무회의 대신 자신의 예비 총선 지역구에서 열린 행사를 찾는가 하면, 올해 들어 브리핑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장관도 있다.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일부 장관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물론 꾸준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관들도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듯 하다.

편집국 종합》

●이미 다 끝났다… 파장-각자도생 장관들

교육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현재 국내에 없다. 아제르바이잔과 교육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23일 두바이로 출국한 김 부총리는 27일 터키를 방문한 뒤 29일 귀국할 예정이다.

교육부 일각에서는 “교육 정책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교육부총리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김 부총리 측은 “이번 일정은 지난해 이미 확정된 것이어서 불참했을 경우 국가 신인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은 올해 들어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브리핑을 들은 적이 없다. 재경부 관계자는 “인수위가 새로운 정책 기조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재경부 안에서도 “요즘 권 부총리를 통 볼 수가 없다” “물가 급등, 금융시장 불안, 미국 경기침체 등 현안들이 쌓여 있는데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누가 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온다.

‘장관급 차관’으로 통했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요즘 평소처럼 일하고 있다. 인수위는 이미 홍보처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22일에는 텅 빈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통합브리핑룸에서 이날 열린 국무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기도 했다.

명지대 교수 복직 논란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홍보처 직원의 상당수는 “‘일(언론 대못질)’을 계획한 사람들은 저절로 교수가 되는데 시키는 대로 한 사람들은 앞길이 막막할 따름”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다.

●마음은 이미 표밭에… 출마 준비하는 장관들

장병완 기획예산처장관은 오래전부터 4월 총선에서 광주 북갑에 출마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경우다. 장 장관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이날 오전 7시 광주 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광주 경제 포럼’에서 강연했다. 반장식 차관이 대신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2008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안’ 등 예산처 소관 안건도 처리됐다.

장 장관은 최근 미국발 금융 쇼크 대처 방안 등이 논의될 경제정책조정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잡힌 25일에도 광주로 내려가 조선대에서 열리는 서울행정학회 세미나 축사를 할 계획이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7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에세이집 ‘초일류 국가를 향한 도전’ 출판기념회를 열고 ‘금배지를 향한 도전’을 사실상 선언했다. 출판기념회가 이날 오후 6시부터 시작돼 건교부 업무에 별 지장은 없었지만, 이날 오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 보고가 있었다. 이 장관은 전남 함평-영광 또는 광주 광산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서울 중랑 갑을 노리고 있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22일 ‘고별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선 출마 배경과 향후 의정 활동 계획까지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한나라당 입당을 검토하고 있는 조순형(무소속) 의원을 겨냥해 “이제 그만 정계 은퇴하시라”는 막말도 했다. 그는 “2월 4일경 퇴임식을 갖고 설 연휴부터 선거운동에 나설 예정”이라며 “당선되면 (이명박 정부의) 권력이 오만하게 나가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총선 출마설에 대해 “여전히 거취를 고민 중”이라며 부인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장관이 고향인 경북 포항이나 지금 살고 있는 경기 안양 중 한 곳을 고를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장관은 30일 향후 거취를 밝힐 예정이다.

한편 인수위 관계자는 “행자부가 최근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일부 조직을 신설되는 행정안전부 산하로 넣으려다 뒤늦게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버티는 장관들

지난해 8월 초 취임한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은 임기 3년을 채우기를 기대하는 경우다. 고려대 출신인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 직후 이명박 당선인의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이때도 “김 위원장이 학연 덕을 볼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았다.

지난해 11월 취임해 유임설이 돌고 있는 한상률 국세청장은 최근 ‘친기업적 세정’을 강조하는 등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침에 부응하는 모습이다. 한 청장은 올 신년사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이나 성실납세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하거나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납세자를 섬기는 세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14일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는 “올해 세무조사를 지난해보다 5∼10%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2006년 3월 취임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재계 및 연구소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후 발생하는 빈 공간을 공정위의 감시로 메워야 한다”며 출총제 폐지의 대안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출총제 유지라는 기존 정책의 기조를 바꾼 발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11, 18일 연속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 갑작스레 언론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23일 삼성중공업 임원을 서울 종로구 계동 장관 집무실로 불러 “삼성중공업에서 피해 어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며 ‘피해보상금 지원’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장관이 부처 존속을 위한 우호여론 조성을 위해 전시행정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린 끝까지 최선… 제자리 지키는 장관들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꼿꼿한 자세로 악수해 ‘꼿꼿 장수’로 불리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끝까지 맡은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김 장관은 군 안팎에서 유임설이 나돌자 “내 거취에 일절 신경 쓰지 말고, 안보 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전군에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정권 교체기에 ‘삼성 특검’ ‘BBK 특검’ 등 뜨거운 법적 현안들 가운데서도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당장 대통령의 공정하고 투명한 사면권 행사를 위해 3월부터 도입될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장관은 ‘BBK특검’의 위헌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법률가적 판단”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무색무취 모범생’이란 별명처럼 성실하기로 소문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정부조직 개편안 폭풍 속에서도 부처 수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설계 수명이 끝난 고리 원전 1호기가 성공적으로 재가동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성실한 일처리의 결과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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