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한 달 남은 盧대통령 몽니 부리나 노림수 있나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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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편안 거부권 시사… 김만복 사표도 수리 안해

임기를 한 달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의 ‘몽니’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및 공약을 사사건건 비판하더니 22일 국무회의에서는 인수위가 마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내 소신과 철학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평양 대화록’을 유출시킨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사표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인수위와의 자존심 대결로 본 나머지 자신만의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 틈만 나면 새 정부 정책 비난, 민심 역주행 되풀이

올 초부터 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새 정부의 정책을 비난해 왔다. 3일 차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의 신년 인사회에서 “이러다 교육 쓰나미가 오는 것 아니냐…토목공사만 큰 거 한 건 하면 우리 경제가 사는 것이냐”며 3불정책 폐지로 압축되는 이 당선인의 교육정책과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비난했다.

인수위가 ‘작은 정부’를 기치로 정부조직을 13부 2처로 축소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 발표한 16일에는 “정부 통폐합, 부처 통폐합 하는데 대(大)부처주의가 어디에서, 어떤 근거에서 유래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작은 정부’론은 검증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이 당선인 측이 노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임기 말 임기제 공무원의 인사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내자 하루 만인 29일 노 대통령은 오히려 ‘코드 인사’ 강행으로 맞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강보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를 내정한 것. 강 변호사는 사법시험 동기이자 연수원 시절부터 ‘8인회’란 친목회 멤버다.

4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는 농담조였지만 분명한 으름장을 놨다. “(인수위가) ‘인사 자제해 달라’고 해서 ‘인사 자제하겠습니다’ 했는데도 좀 있으니까 또 그러더라. 만일에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인사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한 번 더 나오면 그거는 사람 모욕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맘대로 할 거다”라고 한 것.

노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인수위가 호통 치고, 자기 반성문 같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장관들에게 인수위에 맞서라고 주문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또 9일 2008년도 경제전망과 경제운용 방향을 논의하는 경제점검회의에서 “우리가 올해 경제운용 방향을 얘기해 봐야 말짱 헛방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인수위와 한나라당, 언론의 지적에 무조건적으로 발끈하며 자존심 대결로 간주하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종종 보여 준 ‘민심 역주행’도 되풀이되고 있다. 김만복 국정원장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김 원장 사건의 본질은 국가 정보기관장이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국기 문란’ 행위인데도 청와대는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국기 문란 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 원장이 사의를 표명(15일)한 지 1주일이 넘은 데다 검찰이 내사에 착수했지만 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김 원장이 임기를 함께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노 대통령, 왜?

노 대통령의 태도는 차기 정부의 급격한 정책 방향 전환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인수위가 ‘참여정부 지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지리멸렬한 범여권의 상황을 볼 때 노 대통령으로서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안의 경우 대통합민주신당은 통일부 폐지에는 반대하지만 이 당선인의 ‘작은 정부’에는 찬성하는 듯한 분위기여서 노 대통령이 나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이 ‘노무현 심판론’ 양상으로 전개됐고, 이 당선인은 50% 가까운 절대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 이후 모든 정치의 흐름이 이 당선인과 인수위 위주로 흘러가는 데 대한 반감이란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과거 대통령들의 임기 말보다 높게 나오는 것에 고무돼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일각에서는 권력을 내놓아야 하는 데 대한 불안감, 삼성 특검에서 당선축하금 수수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 남북 정상회담 뒷거래설 등이 노 대통령의 ‘몽니’를 불러왔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더는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새 정부 출범에 적극 협조하는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것을 자신만의 시각에서 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사고를 따를 것을 강요하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라며 “국민들에게 최근 노 대통령의 모습은 ‘지난 5년 내내 보였던 몽니 부리는 것’이란 생각만 들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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