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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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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한 달 동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보여준 행보와 메시지는 16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때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인수위에서 내놓은 정책들은 두 정권 간 지향점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공무원 기강 잡기 스타일도 차이=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은 인수위 기간에 공무원 기강잡기에 나섰지만 포커스는 달랐다.
노 대통령은 공무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본인의 뜻에 따라올 것을 주문했다. 2003년 1월 14일 인수위 회의에서 “일부 공무원은 예산이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인수위가 당장 입법이나 예산을 고려해서 정책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11일 인수위 직원 조회에서는 “정부 보고서가 정책에 대한 심판자처럼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 되고 하는 식으로 결론을 제시하는데 그건 적절치 않다. 최종적으로는 내가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 당선인은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당선인은 1일 시무식에서 “(공무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부처의 이해를 반영시키려고 (인수위에) 나왔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공무원들의 로비를 비판했다.
이 당선인의 한 달간 행보는 ‘친기업’ ‘친안보’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한 달 동안 재계 총수, 중소기업인, 경제연구소장, 금융인,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신성장동력창출 전문가 등을 만나는 경제 행보를 계속했다. 또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겠다”는 등 친기업 발언도 계속했다. 국방부, 합참본부, 한미연합사령부, 재향군인회 등 안보 행보도 이어갔다.
노 대통령도 당선 후 경제5단체장,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을 방문했지만 주로 기업인들의 건의사항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신 노 대통령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행사, 한겨레신문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 하례회 등 코드에 맞는 단체의 행사에 참석했다.
각국 대사 면담이나 종교 신년행사 방문 등은 공통된 일정이었다. 휴일에 이 당선인은 테니스, 노 대통령은 골프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서민 경제정책 vs 정치개혁 강조=인수위에 설치된 특별기구를 보면 두 인수위의 성격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16대 인수위는 노 대통령의 지시로 정무분과위 밑에 ‘정치개혁연구실’을 설치했다. 이 연구실은 중대선거구제, 정치자금의 투명성 제고, 선거공영제 확대 등 정치제도 전반의 문제를 검토했다.
반면 17대 인수위는 국가경쟁력강화특위를 설치했고 그 밑에 투자유치, 한반도대운하, 새만금 등 경제위주의 태스크포스팀이 설치됐다.
인수위가 한 달 동안 발표한 정책들의 방향도 차이가 난다.
16대 인수위는 2003년 1월 3일 첫 정책으로 공무원 다면평가 제도를 발표했다. 7일 발표한 10대 과제에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정치개혁,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이 포함됐다. 업무보고를 받으며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제도, 증권 집단소송제 등 기업 경영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반면 17대 인수위는 서민경제 정책을 주로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인수위 워크숍에서 나온 첫 인수위 정책은 “취임 전 유류세와 통신비 인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6일에는 기업 정기세무조사 대폭 감축과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13일에는 산업은행 민영화와 금산분리 완화, 중소기업 금융제도 개선 등 친기업 정책을 발표했다. 17일에는 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부동산 정책으로 ‘지분형 주택 분양제도’를 발표했다.
▽인수위, 당선인 ‘막후조정’ vs ‘전면배치’=16대 인수위는 당시 3선 의원인 임채정 위원장과 김진표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콤비를 이뤘으며, 각 분과위 간사는 김병준, 윤영관, 이정우, 김대환, 권기홍 등 전체 6명 중 5명이 대학 교수 출신이었다.
이번 17대 인수위는 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부위원장에 4선의 김형오 의원을 선임했다. 분과위 간사는 7명 중 국회의원이 5명을 차지했다. 간사에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16대 인수위 때 노 대통령은 인수위 활동에 전면으로 나서 일일회의, 매주 전체회의와 간사단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반면, 이 당선인은 인수위 회의에 참석한 것이 4번에 불과했다. 그는 평소 회의는 위원장에게 맡긴 채 막후에서 큰 틀만 제시하고 가끔 종합적인 보고만 받았다. 대신 비공식 정부조직개편 회의를 15차례 주재하는 등 큰 방향을 잡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정기선 기자 ks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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