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물밑에선]“임기나 채울까” 예정된 일도 차일피일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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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정치적 연줄로 공기업 경영진 자리를 차지한 이른바 ‘낙하산 인사’들이 대선 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청와대와의 연줄이나 각종 선거에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공기업 사장과 감사 등을 꿰찼다. 하지만 10년만의 정권 교체로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적지 않은 사람이 거취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집에서 ‘공기업 사장에 대한 코드 인사 연결고리를 해체하고, 감사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명문화한 만큼 조만간 낙하산 인사들에 대한 인사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임기 채울 수 있을까” 좌불안석

한국전력 등 24개 주요 공기업에 따르면 역대 사장 중 80% 가량은 정치인, 관료, 군인 등 외부에서 온 낙하산 성격의 인사였다. ‘청탁 인사’가 없다고 공언했던 현 정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순균 방송광고공사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였으며 박재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노 후보의 조직특보를 지냈다. 이백만 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과 이용철 전 대통령 법무·민정2비서관은 예금보험공사의 비상임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 낙하산 인사가 당연시되면서 주요 공기업의 부채가 74% 늘었지만 임직원은 오히려 64% 증가하는 등 방만·부실경영의 폐해가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건설교통부 산하 공기업 간부는 “임원들이 임기가 정해져 있어 당장 옷을 벗지는 않겠지만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극도의 대립관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리보전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최근 사장이 기획팀에 이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누가 들어가는지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다”며 “차기 정권의 움직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 출신으로 현재 환경부 산하 한 공공기관 사장은 “(정권을 세운) 공이 없으면 녹도 없다”는 말로 자신의 심리를 표현했다.

반면 다른 환경부 산하 공기업 임원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임기 보장을 희망했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아 임기를 마치더라도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정치인 출신인 한 공기업 임원은 “이번 대선은 단지 정부만 바뀐 게 아니라 여야가 교체됐기 때문에 다들 각오를 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인 출신은 아니지만 낙하산이나 다름없는 인사들도 마음을 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은 ‘신정아 사건’으로 구속된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부산고 동기동창인 데다 청와대 핵심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아 취임 당시부터 정권과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주공은 사장과 대등한 예우를 받는 감사직도 열린우리당 지구당위원장 출신으로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성백영 씨가 맡고 있다.

공기업 감사들은 올해 초 ‘이구아수 폭포 집단외유’ 파문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사장과 비슷한 보수를 받는 반면 실제 하는 업무는 별로 없고 견제장치마저 허술해 ‘꽃보직’으로 불려 왔다.

○ 새 정부 공기업 인사는 어떻게 될까

이 당선자가 실적을 중시하는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인 만큼 논공행상보다는 실적을 기반으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관료나 정치인보다는 기업인 출신이 대거 중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대선 과정에서 빚을 진 인사들을 어떤 식으로든 예우해 줘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인사 시스템과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이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이 당선자는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니고 현 대통령보다는 신세 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낙하산 수요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도 공기업 임원에 대해 공개모집과 심사를 하는 제도를 갖췄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오면 모조리 내치는 방식의 인사였다”며 “코드가 아닌 실적만으로 뽑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정부 초기부터 공기업 임원을 뽑으면서 특정 인사를 미리 낙점해 놓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세우는 사례가 많아 ‘무늬만 공모’라는 지적이 많았다.

유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모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선발해 정부와 함께 책임을 지우고 상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요 공기업의 낙하산 사장 현황
공기업대표주요 경력
국민체육진흥공단박재호노무현 대통령 후보 조직특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철제17대 총선 열린우리당 후보
한국방송광고공사정순균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
한국가스안전공사이헌만제17대 총선 열린우리당 후보
한국전력이원걸열린우리당 수석 전문위원, 산업자원부 차관
대한주택공사박세흠대우건설 사장
한국마사회이우재제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한국방송공사(KBS)정연주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사
한국조폐공사이해성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
대한법률구조공단허진호제17대 총선 열린우리당 후보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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