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기획입국’ 논란 확산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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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김경준 씨의 국내 송환 결정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김경준 기획 입국’ 의혹을 제기한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5일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가 말해준다. 김 씨가 국내에서 얻을 게 없는데도 굳이 입국을 감행한 데는 ‘제3의 정치적 동력(動力)’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지금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대선이 끝나면 모든 게 다 밝혀지게 되어 있다. 그게 공작 정치의 생리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동영 후보의 최측근 의원이 김경준과 접촉했다”=홍준표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남겠다며 ‘인신 보호 청원’까지 낸 김경준이 왜 대선을 앞두고 귀국하겠나. 모종의 공작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무기 징역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여권과 손을 잡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이른바 ‘기획 입국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일설에는 범여권이 집권할 경우 김 씨의 사면을 약속한 조건으로 귀국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한 뒤 다음 날인 15일 “저쪽(범여권)과는 특별사면 협상을 한 것으로 안다”고 재확인했다.

당 내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도 같은 날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 국민성공대장정강원대회에서 “범여권의 중진 인사가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특별팀까지 구성해 김 씨 송환을 진두지휘했다고 들었다. 유력 정치인의 측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수희 의원은 6일 논평을 내고 “미주한인신문 선데이저널을 보면 김경준 씨 조기 송환의 숨은 공신이 대통합민주신당 박영선 의원”이라며 “누군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얘기가 한인사회에서 큰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신문에는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동결된 3000만 달러에 대해 한국 현 정권의 협조를 받기 위해 동생의 송환을 두고 정동영 후보 측과 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씨가 지인과 영어로 나눈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올 3∼6월에 한국의 ‘하이 레벨’ 인사가 김 씨를 찾아와 사면과 감형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정치위원회 관계자는 “범여권이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에 계속 반발하고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안’을 처리하려 한다면 그들이 김경준 건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촬영 : 이종승 기자


촬영 : 이종승 기자

▽범여권, “소설 쓰지 마라”=대통합민주신당은 한나라당이 이날 김경준 씨 기획송환설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우리가 송환했다면 검찰 수사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겠느냐”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김 씨 송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의원으로 지목된 박영선 의원은 “한나라당은 ‘소설’을 쓰지 말라. 내가 김경준을 만났다는 것은 100% 거짓말이다.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검찰 수사결과가 이명박 후보 무혐의로 나왔다는 건 오히려 한나라당이 김 씨의 송환을 기획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며 “한나라당이 지금 상황이 좋다고 기고만장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촬영 : 김동주 기자


촬영 : 김동주 기자

▽검찰 직접적 언급 피해= 김경준 씨의 기획 입국 여부의 실체에 가장 접근했을 검찰은 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BBK 사건을 담당했던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5일 김 씨의 한국 송환 배경에 대해 “그것은 수사대상이 아니다. 왜 왔느냐는 데 대한 수사는 안 했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김 씨에게 입국 경위에 대한 조사를 벌이긴 했지만 이를 조서에 남기지 않았다. 후폭풍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이라 오해의 소지를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선 김 씨 입국 경위가 곧바로 정치권의 개입 논란으로 번질, 인화성이 높은 문제로 보고 있다. 본격적인 조사 착수 자체가 격렬한 정치 공방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검찰 주변에선 언젠가 김 씨 입국 경위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이를 대비해 김 씨 입국 경위에 대한 조사 결과를 ‘히든 카드’로 남겨두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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