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대선 뒤흔든 3대 폭로사건의 실체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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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정승윤 교수 공소장-판결문 분석

《검사 출신의 부산대 법대 정승윤 교수가 21일 2002년 대통령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던 3대 허위 폭로 사건을 분석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가’라는 책을 발간했다. 정 교수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측근의 20만 달러 수수설’ ‘이 총재 아들 병역비리 은폐 의혹’ ‘이 총재 부인 한인옥 씨의 기양건설 로비자금 10억 원 수수설’ 등 3가지 사건의 검찰 공소장과 법원 판결문을 입수 분석해 공개했다. 정 교수는 “흑색선전 방식의 정치공작으로 탄생한 정부는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고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 정책을 독선적으로 결정 집행하는 독재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대 사건 모두 검찰수사 결과가 선거 이후에 발표돼 선거에 영향을 미쳤고, 재판 이후 가석방, 특별사면 및 복권 등을 통해 선거에서 이긴 자는 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분석한 3대 사건의 진행 과정과 특징, 수사 및 재판 과정의 문제점 등을 소개한다.》

■이회창 총재 아들 병역비리 은폐 의혹

모두 허위사실

김대업 씨는 2002년 5월 21일 한 인터넷매체에 “김길부 전 병무청장으로부터 ‘19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총재 큰아들 정연 씨의 불법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김 전 병무청장, 신한국당 이 총재의 측근인 고흥길 특보 등이 수차례 대책회의를 했으며, 국군춘천병원에 남아 있던 병역판정부표를 폐기하고 병무청에 남아 있는 병적기록부 원본도 변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폭로 유형, 특징=이 사건은 김 씨가 수감 중 김 전 병무청장을 대면한 뒤 인터넷매체에 밝힌 준비 및 폭로, 공신력이 약한 마이너 언론 보도를 통한 공론화 시도,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통한 정치 쟁점화,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 쟁점의 확산, 메이저 언론과 방송을 통한 기정사실화, 시민단체의 유권자 선동을 통한 세뇌화 단계를 거쳤다고 정 교수는 분석했다.

▽검찰수사=검찰은 대선이 끝난 뒤 이 사건과 김 씨 신병을 처리했다.

정 교수는 “검찰이 정치공작 사건을 단순히 형법상 개인의 범죄 정도로 축소 기소했다”며 “이회창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 내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상 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죄에 관련된 내용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관련 가담자에 대한 수사도 눈가림식으로 진행하든지 불기소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검찰이 시민단체라며 김 씨의 폭로행위에 적극 가담하고 유권자를 선동한 핵심세력인 ‘민주개혁국민연합’의 대표 이해학 목사를 기소유예 처분하고 효림 스님은 무혐의 처분한 점 △이 후보의 병역비리를 전단지와 책으로 배포한 민주개혁국민연합 관계자들을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가 아닌 단순 불법 인쇄물 제작 배포 행위로 축소한 점을 들었다.

▽재판 결과와 이후=김 씨는 서울지방법원에서 2003년 11월 징역 1년 10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 사건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공무원자격사칭죄’로 처벌을 받아 판결에서 선거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 범죄라는 점이 고려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형기를 채우지 않고 가석방됐다. 정 교수는 “김 씨의 동생 김윤업 씨는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채용됐고 민주개혁국민연합은 노무현 정권 탄생 후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핵심 관계자는 요직에 채용돼 큰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회창 총재 측근의 20만 달러 수수설

선거 뒤에 처리

2002년 4월 19일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 설훈 의원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가 2001년 12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인 윤여준 의원 자택에서 윤 의원에게 20만 달러를 전달했고, 이 총재는 윤 의원을 통해 이를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 전 의원은 이어 “이 총재의 부인 한인옥 씨가 최규선 씨를 3, 4차례 만났고, 아들인 정연 씨는 최 씨에게서 용돈을 받거나 e메일을 주고받는 사이였다”는 내용도 함께 폭로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폭로 유형, 특징=다른 두 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국회의원이 직접 허위 사실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공론화를 시도한 경우다. 의원 자체가 주는 공적(公的) 신뢰와 설 전 의원 개인의 정치 경력에서 나오는 사적(私的) 신뢰가 ‘폭로 내용은 진실’이라는 담보 역할을 해 폭발력을 가졌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검찰 수사=정 교수는 “검찰이 개인적 법익 침해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국가적 법익 침해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모두를 적용한 조치는 적정한 기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2년 4월 20일 고소된 사건을 10개월이나 지연 처리한 점 △설 전 의원이 정보를 무리하게 공개한 이유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수사 과정에서 설 전 의원이 폭로한 정보의 출처가 김현섭 전 대통령민정비서관으로 밝혀졌으나, 검찰은 2003년 3월 김 전 비서관이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소재 불명을 사유로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재판 결과와 이후=설 전 의원은 2004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2005년 1월 5일 상고 포기로 형이 확정되었다. 법원은 또 정신적 손해배상과 관련된 민사재판에서 한나라당에 8000만 원, 윤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설 전 의원은 2007년 2월 특별사면과 특별복권돼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경선 상황실장을 맡는 등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회창 총재 부인 10억 원 수수설

솜방망이 처벌

2002년 대선을 눈앞에 둔 11월 김선용, 이교식 씨는 민주당 측에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 씨가 기양건설로부터 10억 원의 검은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기양건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할인받은 138억 원 중 10억 원이 한 씨에게 지급됐다”는 내용이 적힌 위조된 ‘자금지출명세서’를 만들어 주간지에 공개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폭로 유형, 특징=이 사건은 김선용, 이교식 씨가 민주당 법률지원단 국장에게 진정서를 건네주고, 민주당 전갑길 전 의원이 폭로를 하는 ‘준비 및 폭로 단계’를 거쳤다. 이어 자료를 위조해 특정 주간지 기자에게 허위 사실을 공개하도록 하는 ‘특정 언론의 공론화 단계’와 민주당이 당보 호외를 발간하고 천정배 의원이 한 씨를 검찰에 고발해 정치 쟁점화하는 ‘여론몰이 단계’ 순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검찰 수사=검찰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2003년 4월 김선용, 이교식 씨의 폭로 내용이 근거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선 기간에 발생한 흑색선전 사범을 대선 이후에 처리한 것이다.

정 교수는 “검찰은 2003년 6월 정대철 전 의원을 불기소할 때 ‘김 씨는 이 씨를 제쳐놓고 민주당 당직자들과 다각적으로 접촉하면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 주도적으로 관련 제보와 자료를 제공하였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스스로 김 씨가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해 놓고 관련 기소를 누락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는 것이 정 교수의 비판이다.

▽재판 결과와 이후=서울지방법원은 2003년 10월 이 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고, 김 씨에 대해서는 서울고등법원이 2004년 9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씨는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마칠 무렵 가석방되었으나 김 씨는 훨씬 많은 기간을 남기고 가석방되었다. 사기 전과가 많은 김 씨는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폭로 행위를 주도했고 이 씨 진술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 후 이 씨에게 도주하도록 권유했으며 스스로 도주했다가 잡힌 경험이 있는데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정의와 형평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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