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론②/조동호]경협 활성화는 목적 아닌 수단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실질적 내용은 경협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주제는 남북 정상끼리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안인 핵 문제는 대미관계 정상화라는 북한의 숙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주제여서 남북 정상회담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동안 핵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우리 스스로 지지해 온 6자회담의 틀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 자칫하면 핵 문제 해결의 대가를 우리 혼자 덤터기 쓸지 모른다.

남북 경제공동체 로드맵 만들자

평화체제 문제 역시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과의 협의 없이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현실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우방과의 관계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외교에 노련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런 주제를 남북 정상회담으로 해결할 리도 없다. 이산가족이나 국군포로와 같은 인도적 문제 또한 북한의 체제와 관련된 주제여서 획기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반면에 남북경협 활성화는 양 정상의 합의만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주제이다. 아직도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으로서는 경협 확대에 충분한 유인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남북경협의 새로운 모멘텀 확보를 위해 대규모 경협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발표될 ‘8·30 공동선언’에서 경협 이외의 주제는 아무리 화려한 수사로 장식된들 추상적 선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상회담 발표 직후부터 대규모 경협사업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전망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집중되는 점은 아쉽다. 더욱 중요한 점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북경협 활성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수단이다. 경협에 대한 정부 지원은 그래서 명분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협사업을 할지 고민하기 전에 우선 남북 경제공동체의 비전과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도로 사업의 경우 연결된 이후 무엇을 어디로 실어 나를지, 우리 경제에는 어떤 도움이 있는지, 후속 사업으로는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그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제도적 과제가 있는지 등등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사업부터 추진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연결 행사만 했을 뿐 실제 열차는 운행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순서가 바뀐 정책의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경협사업을 열거하기 이전에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마련에 대한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청사진에서는 남북 경제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각 단계에서 남북경협이 어떻게 활용되며 그 과정에서 남북 경제에는 어떤 실익을 가져오게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담겨야 한다.

‘퍼주기 논란’ 더는 없어야

그래야만 남북경협이 장기적 전망 아래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퍼주기’ 논란을 벗어나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 사전에 마련된 청사진은 남북경협에 관심을 가진 국내외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청사진은 경제 관련 고위 공무원 및 학자 간의 교류와 협력에 대한 내용도 담아야 한다. 아무리 대규모 경협사업이라도 실제 북한 경제의 발전과 남북경협의 활성화로 연결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경제개발 초기 외국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지만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 같은 유능하고 성실한 공무원과 학자 그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경협사업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협력이라는 소프트웨어에도 관심을 모아야 한다.

시점과 장소 등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이번 정상회담. 청사진만 마련될 수 있다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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