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보험? 사절합니다”

  • 입력 2007년 7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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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 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재계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다. 과거 대선 때와 달리 은밀하게 정치권에 줄을 대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2002년 대선 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가 곤욕을 치른 기억이 남아 있는 데다 무엇보다 올해 대선 결과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A그룹 임원은 최근 사석에서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고 과거처럼 정치자금을 제공한다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지 않느냐”며 “자칫 어느 한쪽에 줄섰다가 다른 쪽에 밉보여 망하느니 정치권에 아예 줄서지 않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B그룹 임원은 “사회나 기업이 과거보다 훨씬 투명해져서 음성적인 자금(비자금)을 만들기도 어렵다”며 “설령 정치권의 요구가 있어도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C그룹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그런(정치자금) 요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며 “기업이나 정치인 모두 자칫 자살행위가 될 수 있는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2002년 대선 때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임직원들이 사법 처리된 바 있다.

재계에 불법적인 선거자금 제공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치권은 합법적인 ‘돈줄’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우선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후원금 모금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출마자는 선거비용 상한액의 5%(약 23억 원)를 모금할 수 있지만,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오히려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여야는 당내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가 되면 경선 후보처럼 선거비용 상한액의 5%까지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한 대선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는 “과거처럼 기업을 압박해 정치자금을 받으려 했다간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며 “이제는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 분위기가 과거 대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2002년에도 대선이 임박한 10, 11월에 기업들의 정치자금 제공이 집중됐다.

다만 상당수 기업은 올해 대선이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일부 기업은 내년 투자계획 수립을 대선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재계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개인적 선호보다는 다음 정부가 경제정책과 관련해 어떤 성향을 띨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며 “정권의 성격이 투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처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을 평가해 평점에 따라 정치자금을 공개적으로 분배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3월 취임 직후 “(재계가) 국민에게 정치를 매수하는 것처럼 비치면 안 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기업친화적 정당 및 후보에 대한 공개적 지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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