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보고서 변조 의혹]언론공개 보고서 ‘VIP’용어 등장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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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고서는 9쪽”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1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한 정부 보고서에 대해 “정부가 작성한 것은 9쪽짜리”라고 밝혀 보고서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에 유출된 보고서는 37쪽이다. 이종승 기자
“정부 보고서는 9쪽”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1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한 정부 보고서에 대해 “정부가 작성한 것은 9쪽짜리”라고 밝혀 보고서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에 유출된 보고서는 37쪽이다. 이종승 기자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1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발언을 통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보고서가 정부 태스크포스(TF)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함에 따라 ‘누가 왜 이 보고서를 만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누군가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핵심 정책 구상인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보고서를 만든 뒤 언론에 유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① 37쪽 보고서 누가, 왜 만들었나

이날 건교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보고서에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VIP’라는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청와대에서 만든 보고서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VIP는 정부 내 고위 인사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은어로 이 보고서가 단순히 정부 기관의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가 정권 내부 비선 관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TF팀이 만들었다는 9쪽짜리 보고서에 없는 각종 정무적 내용들이 37쪽 보고서 앞뒤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전 시장 측 동향 △정부 및 관련기관 동향 △정치권 동향 △언론 및 환경단체 동향 등은 정부보고서를 만든 TF팀에서 만들었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것.

보고서 중간에 방송의 대운하 토론회 내용에 대한 요약과 방송사 설문조사 결과까지 담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친노(親盧·친 노무현) 직계 인사들이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비선’ 정부 라인을 활용해 보고서를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다”며 “이 전 시장이 독주하는 대선 구도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내포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VIP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이 보고서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국정원이 만든 보고서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② 건교부서 만든 9쪽 보고서와 차이점은

‘한반도 대운하’ 검토 보고서와 관련해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1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에 공개된 보고서는 37쪽짜리였지만 내가 받은 자료는 9쪽짜리”라며 이들 보고서가 서로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장관은 두 보고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밝히지 않았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9쪽짜리 보고서는 태스크포스(TF)팀이 실무 검토한 수준으로 최종 보고서가 아니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교부가 이처럼 9쪽짜리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는 한 두 보고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건교부는 한반도 대운하 검토 보고서 내용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보도된 직후인 4일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경부운하 사업은 1996년 세종연구원 등에서 필요성을 제기하자 1996∼1998년 수자원공사에서 국토개발연구원에 의뢰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며 “최근 경부운하가 사회적 이슈가 됨에 따라 수자원공사에서 국토개발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TF팀을 구성해 1998년 완성된 용역 내용에 대해 실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건교부는 또 “1998년 타당성 조사 때 가정했던 노선이나 주요 시설 등 사업계획은 변경하지 않고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 물동량 변화, 운항선박 발전 등 변화된 여건을 고려하여 재분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과는 사업계획 자체가 다른 안(案)을 검토한 만큼 정치적인 의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편 이 장관의 국회 발언이 나온 18일 홍형표 건교부 수자원정책팀장은 “청와대에 보고한 것과 언론에 공개된 보고서의 내용은 일부 유사하지만 페이지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는 건교부가 검토한 보고서 역시 경부 대운하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37쪽짜리 보고서는 경제성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비용-편익비율(B/C)을 0.16으로 분석해 이 전 시장 측의 2.3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B/C가 0.16이면 100원을 투자할 경우 16원을 번다는 뜻이고 2.3이면 230원을 번다는 의미다.

수자원공사 등이 이 전 시장의 안대로 연구를 하지 않았는데 이코노미스트에 보도된 보고서에 ‘MB 측’이란 표현이 들어 있는 것은 누군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연구결과를 끼워 맞추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③李건교, 두 보고서 차이점 왜 밝혔나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왜 이제 와서 언론에 보도된 대운하 보고서가 실제 정부가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을까. 이 장관은 그동안 두 개의 보고서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한나라당은 18일까지 이 장관이 두 개의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달 초 이코노미스트에 37쪽짜리 보고서 내용이 처음 공개된 이후 파장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이 장관은 관계기관 책임자로 작성 여부를 TF팀에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때문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는 이 장관이 두 보고서의 차이를 일찍부터 알았지만 특정한 ‘목적’이나 ‘지시’에 의해 일부러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장관이 같은 보고서로 판단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장관이 두 보고서의 차이점을 밝힌 이유가 자신에게 쏠릴지도 모를 이명박 캠프의 정치 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한나라당에서 나오고 있다.

자신이 보고받은 경부운하 재검토 문건은 1998년 용역 내용을 단순 재검토한 수준으로 이 전 시장이 밝힌 한반도 대운하 구상과는 노선이나 주요 시설 등 내용이 근본적으로 달라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이 장관이 이날 37쪽짜리 보고서를 받아 곧바로 청와대에 작성 여부를 확인해 국회에서 공개한 것도 청와대와 보고서의 연관성 여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 대운하 보고서 관련 정부 관계자 발언 일지 ▼

▽“수자원공사가 1998년 타당성 조사를 벌여 수익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동안의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실무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 본 것이다.”

(6월 4일 건설교통부 관계자)

▽“국토와 국민의 삶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면서 대통령도 이것이 타당한가라는 관심과 의문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조사는)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잘한 일이다.”

(4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대운하의) 경제성은 계속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한다면 (대운하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을 검토해 보겠다.” (11일 한덕수 국무총리·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1998년 수자원공사의 의뢰로 작성한 용역보고서를 최근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공개된 대운하 보고서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15일 최병선 국토연구원장·국회 정무위원회 답변)

▽“내가 건교부 팀장에게 받은 보고서와 언론에 공개된 대운하 보고서가 차이가 난다. 언론에 공개된 보고서는 37쪽짜리였지만 내가 보고 받은 자료는 9쪽짜리였다.”(18일 이용섭 건교부 장관·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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