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한미관계’ 로버트 갈루치 前차관보에게 듣는다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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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대(對)북한 포용정책이 핵 문제의 진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그에 상응해서 진전되기를 바랍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26일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조지타운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3국 간 긴밀한 공동 보조’를 강조했다》

제네바 합의와 이번 베이징 2·13합의를 비교한다면….

“제네바 합의는 매우 상세했다. 완전한 핵 시설 해체, 이미 생산한 플루토늄의 해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만족스럽고 명백한 사찰은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 등 여러 측면에 대해 상세한 방법을 명시했다. 사실 여전히 비밀 해제가 안 된 상세 합의문(minute)은 더욱 자세하게 북한과 국제사회가 해야 할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에 비해 2·13합의는 미래에 대한 훨씬 더 막연한 추정(speculation)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핵 시설 ‘불능화’가 곧 해체를 의미할 것이며, 실무그룹들을 통해 많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추정을 하면서 이미 추출한 핵물질, 우라늄 프로그램, 핵폭탄에 대해선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어떤 것을 이룰 것인지를 불완전하게 규정한 채 서로 이렇게 하겠지 하는 막연한 예상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여전히 경수로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한 언급도 없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반환 문제가 풀리고 나면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칠까.

“BDA 문제는 기술적인 금융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이지만 곧 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어 핵 프로그램 신고 단계에서 장애물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장비,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신고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다.”

한미 간의 공조는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태도에 너무 동정적이고, 북한에 압력을 가하려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에 동참하길 꺼린다고 한동안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한국이 국제 공조의 테이블에 동참하는 것이 주는 새로운 이익을 발견한 것 같아 반갑다. 한국 정부가 일관성을 가지고 미국 일본과 함께 궁극적 목표를 향해 조화로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물론 한미일 3국 간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와 미사일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미국의 우려는 더 광범하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이 잘 조화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다뤄야 성공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선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나는 모든 한국인의 장기적 이익에 기여할 남북 화해의 절박한 필요성을 지지한다. 내가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은 한국이 북한을 끌어안는 정책은 내용이 무엇이든 핵 문제의 현 상황, 그리고 북한이 합의 내용을 어떻게 이행하는지를 면밀히 고려해서 이뤄졌으면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론 낙관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조금 걱정스럽다. 앞으로 수년간 계속해서 북한은 한미 간의 틈을 벌리는 쐐기(wedge) 같은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갈루치 원장은 궁극적으론 한미 간의 상호이익이 북한 이슈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는 모두 중국의 장래를 예상하려 한다. 하지만 심지어 중국 지도자들조차 자기들의 장래를 그렇게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향후 20년간 중국이 매우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매우 강한 군대와 재래식 전력을 갖고 있으며 병력 이동성을 증강하고 있다. 중국의 진로가 어떤 것이든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 일본과 강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노력할 것이다. 미국으로선 중국과 맞닿아 있는 강한 나라를 동맹으로 갖고 있는 것이 무척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간의 이익은 상호적이며 궁극적으로 북한 이슈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韓-美정부 임기말 업적에 쫓겨 너무 많은 압박수단 일찍 포기”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26일 “북한이 단계적으로 핵을 폐기하도록 한다는 전략에는 동의하지만 영변 원자로 일시 폐쇄 정도의 성과에 너무 많은 채찍(압박 수단)을 포기해 버린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1∼2005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동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한반도 정책을 다룬 그린 고문은 26일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 경험에 비춰 볼 때 북한을 다루는 최상의 방식은 뭔가.

“요약하면 ‘북한에 당근(혜택)을 안겨 주라. (성과를 내고) 한 단계 진전시키라. (북한에) 채찍(압박책)을 준비하라. 그리고 채찍의 존재를 분명히 각인시키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너무 많은 압박 수단을 포기한 것 같다. 북한의 약속 이행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유엔 제재위원회를 여는 식의 압박 장치를 만들어 놓았어야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윤영관 전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협상+압력’ 방식을 꾸준히 냈다.”

―구체적으로 뭘 포기했다는 말인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인 돈 2500만 달러가 반환될 것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1718호가 국제법상으론 살아 있지만 실질적으론 유명무실해졌으며, 남북경협 및 인도적 지원이 잇달아 재개될 것이고, 6자회담과는 무관하지만 북한이 두려워하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된다. 이렇게 좋은 선물이 한꺼번에 북한에 주어진 것이다. 13년 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서명한 제네바 합의에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중유 제공 및 경수로 제공이라는 약속 이행이 시작한 뒤 북한 인권 논의는 중단됐고 더 엄격한 사찰의 압박도 없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덫에 걸릴 수 있다.”

―2·13 베이징 합의에 일본을 제외한 참가국은 대부분 긍정적인데….

“외교를 ‘당근’만 갖고 할 수는 없다. 2·13합의 후 1단계로 60일 이내에 영변 원자로를 동결하기로 했다. 북한이 이 약속을 지킬 확률을 ‘50% 이상’으로 본다. 하지만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 시인도 안 했고 핵물질 및 핵무기는 끝까지 가져가려는 의도가 눈에 선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나.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2·13합의를 가능하도록 만든 추진력이었다. 장기 전략보다는 단기 전술에 집착했다. 정권 말기엔 미국이건 한국이건 업적(legacy)에 신경 쓴다. 하지만 다음 정권은 이전 정부의 업적이 남긴 후유증까지 다뤄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목표를 낮춘 걸까, 유연해진 걸까.

“북한의 비핵화 목표, 북한 정권을 보는 부정적 시각,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의심하는 기류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한국에선 남북 정상회담 추진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핵실험 후 1년도 안 돼서 정상회담을 한다고? 그게 성사되면 북한에서 누군가는 큰 훈장을 받을 일이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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