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불지피기’ 내각이 총대메나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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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뒷받침해야” 한명숙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 차원에서 개헌 추진을 뒷받침할 지원기구 발족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개헌 뒷받침해야” 한명숙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 차원에서 개헌 추진을 뒷받침할 지원기구 발족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기구를 구성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 개헌 구상 뒷받침”=한명숙 국무총리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개헌 추진을 행정적 법률적으로 뒷받침할 정부 차원의 지원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개헌지원기구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개헌지원기구는) 관련 부처가 참여하고 학계, 정계, 시민사회단체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로 구성돼야 할 것”이라며 “법무부와 법제처 등 관련 부처와 총리실의 협의하에 조속한 시일 내 기구의 운영과 설치 근거를 마련하라”고 말했다.

개헌지원기구는 한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개헌지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전문가들로 자문기구를 설치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총리의 지시는 국회에서 개헌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정치권이 추진해야 할 일”이라며 중립을 고수한 역대 총리들의 태도와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19일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정부 내 헌법개정위원회는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설명과도 배치된다.

▽“행정부 정치 중립 훼손 우려”=법 전문가들은 개헌지원기구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헌법학자는 행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헌법 개정안 발의권자로서의 대통령 지위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는 구분돼야 한다”며 “한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며 한 총리가 헌법 개정안 발의를 돕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은 일종의 자구 수정에 불과하다”며 “발의하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할 일인데 범정부 차원의 기구를 만들겠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헌지원기구가 결국 법리 지원보다는 대국민 홍보를 겨냥한 기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할 때 행정부가 유신헌법 홍보에 나섰던 것이 연상된다”고 지적했다.

개헌에는 정치적인 성격이 있는 만큼 행정부에 지원기구를 두는 것은 정당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홍석 경북대 법대 교수는 “행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특정인이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선 안 된다”며 “개헌 논의는 정치권에서 할 일이지 내각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가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 내용을 1단계로 분류하고, 개헌지원기구는 그 이후의 2단계 개헌 작업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설명한 데 대해서는 ‘대선 국면까지 개헌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려대 법학과 장영수 교수는 “다음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을 개헌 지원 작업은 불필요한 자원 낭비”라며 “반대로 개헌 과제들이 대선 주자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도라면 이는 개헌을 대선 국면과 연계하겠다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법학과 임지봉 교수는 “법제처와 법무부 등 정부 부처가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바람직하지 못한 개헌 논의의 전개 양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행정부가 개헌 작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안 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문재완 교수는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 발의권이 있으니 행정부가 그 안을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혼자서 개정안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야당, “공무원을 선거운동원으로 만들겠다는 발상”=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공정선거 관리를 해야 하는 대통령과 내각이 최대의 정치적 공방인 개헌에 앞장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공무원을 여권의 선거운동원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지금 중요한 것은 개헌지원기구 구성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과 개헌 제안의 진정성 확보를 통한 국민 공감대 형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개헌 발의를 대통령이 하기로 한 이상 내각에서 실무적인 대책기구를 마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면서 “대책기구를 마련한다는 것만으로 대선 중립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친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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