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 총회장 “재산권 아닌 건학이념 지키려는 것”

  • 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이광선 예장통합 총회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0일 오전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목사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날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은 ‘개방형 이사제’ 조항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신원건 기자
이광선 예장통합 총회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0일 오전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목사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날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은 ‘개방형 이사제’ 조항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신원건 기자
“삭발은 순교를 의미한다.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개정 사학법에 반대한다.”

12일 목회자로서는 드물게 삭발을 단행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이광선 총회장은 20일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은 그의 뒤를 이어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삭발을 단행했다.

―사학법을 반대한다고 목회자들이 삭발까지 해야 하는가.

“목회자들은 함부로 삭발하거나 죽는 일이 없다. 단지 사학법 때문에 머리를 깎은 게 아니다. 신앙과 선교라는 건학이념을 개정 사학법으로는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깎은 것이다. 목회자가 머리를 자르는 것은 순교의 의미다. 일제강점기에도 신앙과 선교가 훼손당하자 순교를 했다.”

―사학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유는 분명하다. 학교운영위원회,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이사는 사학의 건학 이념, 신앙을 모를 수 있으며 좌경사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건학 이념에 엄청난 지장과 방해가 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개방형 이사제를 반대한다면, 사학 비리를 막는 대안은 무엇인가.

“사학 비리는 자체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걸쳐 투명하게 감시하면 된다. 또한 현행 체제 안에서도 충분히 감시가 가능한데 왜 개방형 이사제를 하는가? 이 자리에서 외부 회계법인 감사, 교육청 업무 감사 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진 않겠다. 아무리 봐도 그 이유가 적합하지 않다.”

―기득권 보호를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유재산권의 침해로 손해 보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앙에 대한 고백과 선교라는 사학 건립 이념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방형 이사제가 그걸 건드렸다. 이는 사유재산권 침해보다 더 큰 아픔이다. 오늘 삭발에 동참한 목회자 가운데 학교 관련 이권이 걸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 나이 이제 70이다. 내 이익을 위해 이러겠는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그동안 사학법 개정안을 지지해 오다 입장을 바꾼 이유는….

“찬성도, 반대도 없었다. 그동안 의견을 유보한 것뿐이다. 다만 절박한 마음에 동참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은 바른 결단이다. 이번 문제는 단지 교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공감하는 일이다.”

―향후 계획은….

“우리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우리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장래와 신앙을 위한 것이다. 사학법 재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기독교 사학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거기에 따른 교회의 투쟁은 일제강점기보다 더할 것이다. 앞으로 철저하게 불복종운동을 벌일 것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한나라 “사학법-예산안 연계 안해”▼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와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연계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새해 예산안이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20일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사학법과 예산안은 연계하지 않겠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순리와 정도로 가는 게 정치가 국민에게 봉사하고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조속한 시일 내에 예산안이 정상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 원내대표는 여당이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안 보일 경우 새해 예산안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나라당이 예산안 처리 방침을 분명히 함에 따라 이달 2일로 법정 처리시한을 넘긴 새해 예산안은 이르면 22일, 늦어도 다음 주에는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는 예결위 심의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사학법 대치 정국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예산안 처리를 사학법 재개정을 위한 지렛대로 쓰려 했지만 개방형이사 추천 대상 확대 등에 대한 여당의 반대가 심해 당장 법 재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종교계 사학들은 물론 진보 성향의 개신교단까지 개방형 이사제 폐지를 요구하는 등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사학법 재개정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도 ‘일보 후퇴’를 결정한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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