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통일 사의]겉으론 野공세 탓…속은 ‘포용 사수’ 부담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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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웅 국방부 장관에 이어 사의를 표명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5일 통일부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전날 노무현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사의를 표했다고 밝히고 있다. 신원건 기자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 이어 사의를 표명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5일 통일부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전날 노무현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사의를 표했다고 밝히고 있다. 신원건 기자
두 실장 무슨 얘기 나눌까 차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유력시되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왼쪽)과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안토니오 사카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환영식 도중에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실장 무슨 얘기 나눌까 차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유력시되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왼쪽)과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안토니오 사카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환영식 도중에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주도해 온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사의를 받아들여 내주 중 정부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전면 개편을 단행할 방침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외교안보라인 전면 개편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어서 향후 대북, 대미 정책 기조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장관은 24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사의를 표명한 뒤 25일 오전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공식적으로 사의를 전달했다. 이 장관의 후임으로는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이 유력한 가운데 열린우리당 문희상, 신기남 의원,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라인 개편 전망과 관련해 정부 일각과 야당에서는 “이제 돌려막기 인사 좀 그만 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상 문책인사’=이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해서 그동안 해 온 노력과 성과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정쟁화되는 상황에서 나보다 능력 있는 분이 이 자리에 와서 극복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치 공세가 상당히 강해서 이 장관이 원만하게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대북정책 수행과정에서 큰 과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해 자신의 퇴진을 포용정책 실패로 연결짓는 관측을 부정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선 이 장관의 퇴진이 북한 핵실험 사태에 미숙하게 대응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이 장관이 핵실험 직후 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의 조정’ 가능성을 얘기한 뒤에도 지나치게 포용정책을 고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는 것.

또 이 장관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를 확대하는 데도 부정적이어서 PSI의 참여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이견을 보이는 것도 향후 대북정책을 펴나가는 데 부담이 됐다고 한다. 실제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정부 내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미온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 장관 사의를 받아들인 배경엔 정부 내 통일된 기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장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는 미국 측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 ‘야당의 정치공세’를 교체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정부가 겉으로는 ‘포용정책 기조불변’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 포용과 압박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타를 조금씩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자주파’의 아성 무너지나?=이 장관의 교체와 함께 외교안보라인의 무게 중심이 자주파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로 조금씩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장관은 여권 내 강경파로부터 ‘위장 숭미(崇美)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시절부터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의 상징이었다.

실제 이 장관이 NSC 사무차장으로 있던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의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장관과 함께 자주파로 분류되는 서주석 대통령안보정책수석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 국방부 차관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전문 인사”=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송민순 실장이 외교부 장관으로 유력하고 송 실장의 자리에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네 번째 부름을 받은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의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왕의 남자’들에 대한 회전문 인사가 계속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SCM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윤 장관을 국정원장 등 요직에 임명한다면 그 같은 회전문 인사를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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