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문책인사’=이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해서 그동안 해 온 노력과 성과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정쟁화되는 상황에서 나보다 능력 있는 분이 이 자리에 와서 극복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치 공세가 상당히 강해서 이 장관이 원만하게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대북정책 수행과정에서 큰 과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해 자신의 퇴진을 포용정책 실패로 연결짓는 관측을 부정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선 이 장관의 퇴진이 북한 핵실험 사태에 미숙하게 대응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이 장관이 핵실험 직후 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의 조정’ 가능성을 얘기한 뒤에도 지나치게 포용정책을 고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는 것.
또 이 장관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를 확대하는 데도 부정적이어서 PSI의 참여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이견을 보이는 것도 향후 대북정책을 펴나가는 데 부담이 됐다고 한다. 실제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정부 내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미온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 장관 사의를 받아들인 배경엔 정부 내 통일된 기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장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는 미국 측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 ‘야당의 정치공세’를 교체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정부가 겉으로는 ‘포용정책 기조불변’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 포용과 압박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타를 조금씩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 이 장관이 NSC 사무차장으로 있던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의 핵우산 조항 삭제를 추진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장관과 함께 자주파로 분류되는 서주석 대통령안보정책수석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 국방부 차관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전문 인사”=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송민순 실장이 외교부 장관으로 유력하고 송 실장의 자리에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네 번째 부름을 받은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의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왕의 남자’들에 대한 회전문 인사가 계속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SCM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윤 장관을 국정원장 등 요직에 임명한다면 그 같은 회전문 인사를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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