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수천개 소련도 무너져… 北정권유지 헛꿈”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2시 54분


윤이상음악제 참관차 17∼21일 평양을 방문하고 온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특별기고를 통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고 미국 등 관련국은 북한의 퇴로를 열어주며 협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윤이상음악제 참관차 17∼21일 평양을 방문하고 온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특별기고를 통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고 미국 등 관련국은 북한의 퇴로를 열어주며 협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핵실험 성공 군민대회 20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평양시 군민대회’에 참가한 북한 군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 연합뉴스
핵실험 성공 군민대회 20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평양시 군민대회’에 참가한 북한 군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유엔이 대북 제재를 추진하면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과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다녀왔다. 윤이상음악제를 참관하기 위해 17∼21일 방북한 이들은 평양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핵문제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일행은 평양에서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지만 북한 당국자들은 핵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고 전했다. 북측 당국자들은 핵실험은 무기의 기능적 측면을 시험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하면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특히 북측 인사들은 6자회담은 누구보다도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도 미국과의 상호불신이 회담 재개의 걸림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

한, 박 전 장관 일행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북측 인사들에게 권했다고 말했다. 북한 인사들은 이런 제의에 대해 완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은 채 핵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외무장관에 이어 현 정부 초대 주미대사로 북한 핵문제에 관한 정책을 주도했던 한 전 장관은 이번 방북 기간 중 북한 당국자들과 나눈 얘기를 토대로 북한의 핵실험 및 핵무기 보유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북핵 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글을 보내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방북한 것을 비롯해 수차례 방북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세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박 전 장관은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방북에서 보고 들은 것과 느낀 점 등을 상세히 밝혔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고 실험함으로써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내 정치적 기반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핵 개발 및 보유, 그리고 실험을 김정일 위원장의 커다란 업적으로 선전하고 20일에는 10만여 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자축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북한이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에게 긍지를 주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무장화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려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만 미국 중국 등을 포함한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을 지도층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둘째, 북한은 자국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의 전례에 따라 궁극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의 위치를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앞으로 설혹 핵문제 논의나 협상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이것을 북한 핵문제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닌, 핵보유국 간의 군축회의의 성격을 가질 것을 고집할 것이다.

셋째, 외부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여 억제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장의 책임을 주로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 대북 군사적 위협으로 돌린다. 또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남한에도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던 것은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북한은 핵으로 무장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무력 균형에서 우위를 점하려 할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 철수 및 재배치 등을 통한 한미 동맹의 변화와 관련해 남북한 간의 상대적 군사력이 상호간의 협상 입지와 능력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북한은 핵무기의 보유가 체제와 정권의 보호와 유지에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의 정권교체 기도를 차단하고 방지하는 차원에서 핵무기의 유용성을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핵실험이 다른 목적 달성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는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과거 구소련이 수천 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권도 체제도 유지하지 못한 예가 있다.

실제로 북한은 핵실험으로 얻은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크다고 하겠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 러시아까지도 동참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미국과 일본 등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할 것을 다짐하며 다른 나라들도 적극 동참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도 이러한 경제적 압력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일하게 한국 정부가 이러한 국제적 추세에 적극적인 동조를 유보하고 있으나 외교적 고립을 면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어느 정도 공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의 경제제재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이 더 악화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동시에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에서 대북 강경파의 입장만 강화시켜 주고 북한이 원하는 금융제재의 완화나 미국과의 양자협상은 더욱 가능성이 멀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금융, 무역, 불법 활동에 대한 제재를 강화시킴으로써 북한 경제의 위축은 물론 제재국들과의 충돌 가능성만 증가시켰다. 주변국들의 핵무장화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결국 북한은 핵을 보유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미국과 일본의 견제 강화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북한은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고립을 초래하였다. 한반도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무기는 평화보다는 무력 분쟁의 가능성을, 안보보다는 불안을 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악화되어 가는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핵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북한에 있으나 지난 수년간 미국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이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고 볼 수 없다. 먼저 북한은 경제적 외교적 손실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 금융 제재의 철회는 6자회담 참가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것이 아니고 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이다. 미국도 6자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양자 접촉을 포함한 모든 형식과 내용의 협의가 가능하다는 뜻을 확실히 하고 있다. 유엔의 제재 문제도 6자회담에서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철회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미국은 북한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적대시하던 나라 사이의 신뢰관계란 갑자기 한두 가지의 행동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점진적이고 인내심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 역시 한 번의 강력한 조치나 약속으로 문제를 일거에 풀어 보겠다는 과욕을 버리고 인내심 있는 노력을 경주해 단계적 해결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는 응징의 수단으로보다는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즉, 제재가 북한의 반발보다는 협상 재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북한에 지금까지의 공격적인 정책에서 선회할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국 간, 특히 한미 간의 창의적인 외교와 긴밀한 공조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한승주 前외무부 장관

△1940년생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2006년 2월 정년퇴임) △고려대 총장서리(2002년 6월∼2003년 2월) △외무부 장관(1993년 2월∼1994년 12월) △주미 한국대사(2003년 4월∼2005년 2월) △고려대 부설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 역임 △현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이사 △저서 ‘전환기 한국의 선택’(1992년) ‘세계화시대 한국 외교’(1995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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