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뿐인 ‘작계5029’ 北 급변사태 무방비

  •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철조망 너머의 北 女보위대원북한의 핵실험 실시 사흘째인 12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순찰 중인 보위대원들. 보위대는 중요 공장과 시설을 보위하는 비정규군으로 주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17세 이상 여성들이 결혼 전까지 근무하며, 북한에서는 괜찮은 여성 직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단둥=AP 연합뉴스
철조망 너머의 北 女보위대원
북한의 핵실험 실시 사흘째인 12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순찰 중인 보위대원들. 보위대는 중요 공장과 시설을 보위하는 비정규군으로 주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17세 이상 여성들이 결혼 전까지 근무하며, 북한에서는 괜찮은 여성 직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단둥=AP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안보 위기가 초래되면서 한국과 미국이 개념계획(CONPLAN) 수준에서 보완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던 작전계획(OPLAN) 5029가 재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작계 5029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이나 소요 등 북한 내 각종 우발 사태에 대비한 한미 양국의 군사적 대비책이다.

미국은 작계 5029가 상정한 우발 상황 중 북한에서 쿠데타나 내전이 발생해 반군이 핵무기를 탈취해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해외 테러집단에 밀반출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은 2003년 말 한미 양국의 군 수뇌부가 참석한 군사위원회(MCM)에서 작계 5029의 수립을 제의했고, 한국 정부도 이를 수용해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작계 5029의 추진 계획에 돌연 제동을 걸면서 이 사안은 한미 간 쟁점으로 부각됐다. 당시 NSC는 작계 5029의 주권침해 요소를 들어 국방부에 미국과 협의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NSC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자주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계 5029가 수립되면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이 군사작전을 주도해 한국의 역할과 입지가 크게 제약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NSC 사무차장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는 동북아 안정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인 만큼 한미 공동의 작전계획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주한미군은 NSC가 고도의 군 기밀인 작계 수립계획을 노출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고조됐다.

결국 지난해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양측은 작계 5029를 작전계획으로 완성하지 않고 개념계획 수준에서 보완 발전시키기로 합의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작전계획의 전 단계인 개념계획은 작전부대 전개와 병력 이동방안 등 구체적인 군사력 운용방안이 빠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공식 확인될 경우 미국은 작계 5029의 수립을 다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 본토를 겨냥한 핵 테러를 가장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 정권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사태에 대비해 구체적이고 확실한 군사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지를 한국 정부에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미국은 북한이 핵을 직접 사용할 가능성보다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세력의 수중에 들어가는 상황을 더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이 북한 핵실험 후 달라진 안보전략을 들어 작계 5029의 수립을 공식 요구할 경우 한국도 거부할 명분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예상되는 북한 급변사태 유형
유형예상 원인예상 결과
국내 정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노동당 기능 마비-정권 교체-위기관리 정권의 등장-권위주의적 개발체제의 형성-무정부 또는 내전 상태-대규모 난민사태 발생
경제 사회-자원 및 식량 부족 -대량 탈북자 발생-주민들의 집단 저항
군사-주변국과의 군사적 충돌 -군부 분열로 인한 내전-한국에 대한 국지 도발

“제재 길어지면 北 주민 통제력 잃을것”

북한은 지금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

7월 5일 미사일 발사에 이어 9일 이뤄진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 경제제재 등 강도 높은 대북제재 방안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은 북한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국제 사회의 압박은 북한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높아진 급변사태 가능성=북한 급변사태는 체제 붕괴와 정권 교체, 대량 탈북 사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으로 불거진 1차 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은 1990년대 후반 북한의 부분적 개방과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으로 그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핵실험으로 북한 내부의 결속력은 강화됐을 수 있지만 주변국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된 데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경제난이 올 수 있다는 것.

미국이 ‘레드 라인(red line·한계선)’으로 설정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북한이 체제의 사활을 걸고 미국과 담판 짓기에 나선 것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대북제재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 유엔 결의안으로 대북 경제제재가 이뤄질 것이 분명한 데다 이번 결의안에도 북한이 반응하지 않으면 더욱 강도 높은 제재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쌀 등 대북지원이 중단될 경우 심각한 위기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연간 식량소요량은 650만 t이지만 자체 생산량은 450만 t에 불과해 매년 200만 t가량의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20만∼30만 t의 식량을 지원해 오던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쌀 지원을 15만 t으로 줄였으며 매년 50만 t의 쌀을 지원했던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쌀 지원을 끊었다.

이 때문에 7월 수해로 농업에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진 북한에 대북지원 중단이 장기화되면 1990년대 중반의 대량 아사자 발생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핵실험은 북한 체제의 위기지수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북제재가 장기화돼 경제난이 악화될 경우 체제 정통성은 물론 주민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급변사태 미비=정부는 1994년 1차 핵위기 이후 급변사태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왔다. 1996년부터 미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 및 소요 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CONPLAN) 수립에 나선 것.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 북한 급변사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대북 포용정책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급변사태 준비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부 부처별로 급변사태 내재단계→가능단계→임박단계→발생단계 등으로 나눠 마련한 식량지원과 난민문제, 재원조달, 국제공조 등의 정책과제와 추진체계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준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핵실험으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에 끼칠 악영향이 훨씬 커진 만큼 체계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