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후 판문각-평양 두 표정

  • 입력 200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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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갇힌 북녘 땅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한 지 사흘째인 11일 도라산 전망대를 찾은 내외신 기자들이 안개 낀 개성공단 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정한 채 취재하고 있다. 도라산=박영대 기자
안개에 갇힌 북녘 땅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한 지 사흘째인 11일 도라산 전망대를 찾은 내외신 기자들이 안개 낀 개성공단 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정한 채 취재하고 있다. 도라산=박영대 기자
춤추는 평양 주민들북한 노동당 창건 61주년 기념일인 10일 북한 주민들이 평양 중심부 대동강가에 있는 주체사상탑 앞에서 경축무도회를 하고 있다. 해마다 명절을 맞아 평균 10번 정도 실시하는 행사다. 평양=AP 연합뉴스
춤추는 평양 주민들
북한 노동당 창건 61주년 기념일인 10일 북한 주민들이 평양 중심부 대동강가에 있는 주체사상탑 앞에서 경축무도회를 하고 있다. 해마다 명절을 맞아 평균 10번 정도 실시하는 행사다. 평양=AP 연합뉴스
“핵실험 이후 북한 병사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11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산읍 판문점에서 만난 유엔군사령부 소속 데바로나 미군 소령은 “북한군 경비요원들이 때때로 고함을 치거나 과장된 몸짓을 하는 등 의도적으로 자신감을 보여 주려는 행동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핵실험 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북한식 오버액션’으로 한미연합사 관계자는 해석했다.

취재진이 유엔군 측 자유의 집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나가자 3, 4명에 불과했던 북한군 경비요원이 갑자기 9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군사분계선 바로 앞에 4명이 일렬로 늘어섰고 5명은 그 뒤에 섰다. 한국 측 경비병과의 거리는 불과 2m 정도. 양측 간에 말은 없었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미연합사 관계자는 “2년간 판문점을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경비요원이 몰려나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남측에서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할 경우 북한 경비요원은 판문각 건물 앞에 1명 정도 서 있고, 북한에서 특별한 관광객이 오면 서너 명이 나온다는 것.

이 관계자는 “북한 경비요원이 대거 몰려나온 것은 국내외 취재진에게 자신감과 위압적인 인상을 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기자가 군사분계선 부근에 머물 때인 이날 오전 10시 10분경 북한이 돌연 경비회담을 요청해 왔다. 공동경비구역 내 건물을 수리하는 일 등 양측이 사소한 문제를 협의할 때면 종종 접촉을 요청해 온다고 유엔사 관계자는 전했다.

오전 10시 반 유엔 당직장교인 크리스토퍼 디그넌 미군 소령과 중립국감독위원회 장교 등 유엔 군측 5명, 북한 측 장교 2명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섰다. 하지만 회담은 3분 만에 끝났다.

북한은 올 7월 물난리가 났을 때 떠내려 온 북한 병사의 유해를 돌려 줄 것을 요청했다고 유엔사는 전했다. 유해는 현재 유엔사가 보관하고 있다. 양측은 12일 오후 2시 다시 경비회담을 열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날 판문점 취재에는 외국 언론사가 대거 몰려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미국 ABC방송과 AP통신, 프랑스 민영방송인 TF1,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을 비롯해 호주와 덴마크 방송 등 모두 21개 외국 매체에서 43명의 취재 및 카메라 기자가 방문했다.

여기에 국내 방송과 신문까지 모두 90여 명의 취재진이 판문점을 찾자 한미연합사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기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판문점에선 중국과 미국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100여 명도 만날 수 있었다. 한 관광객은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위기에 처해 있다는, 세계에서 유일한 공동경비구역인 판문점을 찾으니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은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북한 측 초소의 병사들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날은 100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인 한반도의 현 상황을 보는 듯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으로 이어지는 통일대교 앞 초소의 한 헌병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통일대교를 건너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차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전했다.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경제제재에 앞서 이미 남북협력체제에 금이 가고 있음을 이곳 군인들은 통일대교를 왕래하는 차량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다.

판문점=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화보]北 핵실험 실시 후 사흘째…판문점 표정
◆ [화보]北 핵실험 실시 발표…평상시와 다름없는 평온한 북한

■평양-평소와 다름없이 조용

“북한의 핵실험으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사태의 중심인 평양 시내의 분위기는 평소처럼 평온한 분위기다.”

일본 교도통신과 러시아 관영 이타르타스통신,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외신들은 평양 시내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북한이 핵실험 사실을 발표한 9일은 휴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총서기에 취임한 지 9주년이 되는 8일과 조선노동당 창건 61주년 기념일인 10일 사이에 낀 날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언론 매체들은 핵실험에 관한 보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핵실험 실시 후 이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지 않고 대부분 논평 없이 핵실험 발표 성명 전문을 옮겨 실었을 뿐이었다. 핵실험 성공을 축하하는 대중 집회도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핵실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나 비난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10일 평양 시내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과 가족동반 나들이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만수대 광장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 앞에 아침 일찍부터 많은 시민이 찾아와 헌화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기념행사는 곳곳에서 열렸지만 지난해와 같은 군사행진은 없었다.

북한 관리는 “이미 핵 보유 선언과 실험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놀랄 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리는 “이번 실험으로 핵무기 보유가 증명됐다. 이제 미국도 알 것”이라며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한 시민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이 지도하는 선군정치의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도 일부 드러났다. 신화통신은 “북한 내각이 경제문제 회의를 열어 올해 농작물 작황과 전력 석탄 상황을 점검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1일 평양에 지국을 개설한 일본 교도통신은 11일 이시카와 사토시(石川聰) 사장이 직접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단독회견을 성사시켜 핵실험 후 전 세계 언론 중 처음으로 북한 고위지도자의 육성을 전하는 행운을 누렸다.

반면 CNN 회장을 지낸 테드 터너 터너재단 회장과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이달 말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하려던 계획은 미국 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미국 정부가 민간 차원의 방북까지 막은 것은 앞으로 전면적인 대북 접촉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화보]北 핵실험 실시 발표…평상시와 다름없는 평온한 북한
◆ [화보]北 핵실험 실시 후 사흘째…판문점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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