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美 분주한 ‘미사일 외교’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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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6자회담 당사국들의 공동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 한국, 일본을 순방 중이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1일 오후 베이징(北京)으로 U턴했다. 힐 차관보는 당초 이날 일본 방문을 마지막으로 워싱턴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힐 차관보는 이날 베이징 도착 직후 “중국의 요청으로 다시 왔다”고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다는 것. 중국 정부가 왜 힐 차관보에게 다시 베이징으로 와 달라고 급전(急電)을 띄웠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베이징 공항에서 “분명히 우리는 상당히 결정적 시점(a rather crucial point)에 와 있다. 중국 정부는 중대한 외교적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 뒤 “우리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합류하려는 전략적 선택, 아주 근본적인 선택을 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의 메시지에 뭔가 기대할 만한 게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날 밤 늦게까지 중국 관계자들과 대응책을 협의했다. 접촉 인사들은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 등으로 알려졌다. 12일 오전엔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과도 만나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주중 미국 대사관은 밝혔다.

힐 차관보가 이날 베이징에 도착하기 직전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중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체결 45주년 기념 친선방문단이 중국을 찾았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방문 일정이다. 하지만 그 직후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양 부위원장 일행이 친선방문단이지만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의 최근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방문단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실제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의 중국 측 파트너는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지만, 우 부부장은 이날 현재 평양에 머물며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힐 차관보의 일정에 맞춰 우 부부장이 급거 베이징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여하튼 이날 평양에서는 우 부부장이 북한의 김 외무성 부상과 접촉하면서 베이징에 접촉 결과를 보내고, 베이징에서는 중국과 미국, 북한과 미국이 양자접촉을 하면서 서로 돌파구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러는 한편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지도부에 현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면서도 “일본이 주도한 대북 제재 결의안은 과잉반응으로서 6자회담 재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모순을 격화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손상하고 6자회담 재개 노력을 해치며 유엔 안보리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美일부 언론들 비판

미국의 일부 언론들은 대북 제재에 어정쩡한 중국과 한국 정부의 태도에 우려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10일자 사설에서 “북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남한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상징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세 나라가 나서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경우 이번 주에 예정된 장관급회담을 연기하는 것으로 북한에 압박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9일자 USA투데이도 “남한의 태도가 북한을 제재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USA투데이는 일본의 대응을 ‘야단법석’이라고 표현한 한국의 반응, 북한 미사일보다 월드컵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을 다루면서 “이는 최근 몇 년간 남한의 정치적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반미감정의 확산 속에서 정권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며 “386세대들은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지난주 사설에서 “중국과 남한이 지금까지 대북 압박을 거부한 것은 근대사에서 가장 부도덕하고 흉악한 정권을 키우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나라가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한 다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일자 LA타임스 사설 역시 “중국과 남한은 때로 북한의 핵무기보다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더 염려하고 있다”며 중국에 좀 더 강경한 대응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은 남한의 대응에는 특별히 주목하지 않은 채 미국과 일본, 중국의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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