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표 피습 사건 전후 상황 재구성

  • 입력 2006년 5월 21일 17시 34분


코멘트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은 자연스런 유세과정에서 갑자기 발생했다. 이 때문인지 박 대표는 아무런 경계심이 없이 청중들을 만났다. 20일 박 대표가 피습당하기 전후의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박 대표 도착=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에서 박 대표의 지원을 받아 유세전을 펴기로 했다.

박 대표는 오후 7시 10분 경 유세장에서 마포구 동교동 방향으로 150m 가량 떨어진 횡단보도에 도착했다.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에 내린 박 대표는 당직자, 경호팀 등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횡당보도를 건너 백화점 유세차량 쪽으로 갔다.

박 대표가 횡단보도를 건너자 막 연설을 마친 오 후보는 "박 대표가 지금 도착하셨습니다"고 청중들에게 알렸다.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 대표는 백화점 옆을 지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청중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상한 조짐=이 때 청중 사이에서 한 중년 남성이 "박근혜가 뭐가 좋다고 손뼉치고 난리냐. 한나라당이 잘한 게 뭐가 있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 남자는 나중에 유세 차량 단상의 마이크 지지대를 집어 던진 박모(54) 씨로 확인됐다.

박 대표의 주변에 있던 경호원과 당직자들은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청중들 사이를 지나 유세 차량 오른편에 도착했다. 이 때가 오후 7시 15분경이었다.

박 대표는 청중과 당원들에게 인사하며 오 후보 지지연설을 위해 유세 차량 계단으로 향했다. 그가 첫 계단 위로 올라서자 누군가 악수를 청했다. 박 대표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손은 내밀어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지 씨의 피습=박 대표가 두 번째 계단에 발을 내 딛는 순간 지모(50) 씨가 청중과 경호원 사이로 오른손을 내밀어 박 대표의 오른쪽 얼굴에 커트칼을 휘둘렀다. 이 때 지 씨는 박 대표를 향해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박 대표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왼손으로 오른쪽 뺨을 감쌌다. 눈 깜작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 대표가 주저앉으려는 모습을 본 경호원과 당원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피습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한꺼번에 지 씨를 덮쳐 제압했다.

지 씨는 제압당하는 순간 "박근혜가 흑심이 많아서 찔렀다. 박근혜가 나와서 해준 것이 뭐 있냐"며 "(박 대표)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고함을 질렀다.

당원들이 지 씨를 유세 차량 앞쪽의 시계탑 쪽으로 끌고 가는 동안 일부 흥분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지 씨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때 한 당직자는 지 씨를 향해 "저 사람이 지난해에도 연설 중이던 곽성문 의원의 멱살을 잡았다"고 말했다.

▽박 씨의 난동=지 씨가 박 대표에게 흉기를 휘두른 때와 거의 동시에 유세 차량 바로 앞에서 박 씨가 차량 위에 있던 마이크 지지대를 들어 청중들 쪽으로 집어 던졌다.

만취상태였던 그는 "박근혜를 죽여라.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다"고 소리쳤다. 박 씨도 주변에 있던 당원들에게 곧바로 제압돼 시계탑 쪽으로 끌려갔다.

지 씨와 박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오후 8시경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됐다.

일부 목격자들은 "지 씨와 박 씨 외에도 5, 6명이 박 대표를 비난하다 달아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직자를 포함한 대다수 목격자들은 "달아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병원 도착=박 대표는 오후 7시25분경 오 후보 등의 도움을 받으며 유세 차량 옆에서 대기 중이던 자신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인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7시 40분경 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박 대표는 오후 9시 15분경부터 11시10분경까지 상처 부위를 60바늘이나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이종석기자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