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최근 펴낸 역사에 관한 칼럼집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이경)에서 “친일파에도 적극적 자율적 친일과 소극적 타율적 친일이 있는데 후자까지 다중의 힘으로 밀어붙여 친일행위자로 몰아 마녀사냥 식으로 기준도 없이 응징 성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광복회의 친일파 명단에 여야 국회의원이 임의로 16명의 이름을 추가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1차 친일 명단 3090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어떤 일부의 단면이나 의혹이 증폭된 단순 소문만으로 단정 지으려는 조급하고도 대중 심리적인 짧은 생각이 소영웅적인 심리 작용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이승만(李承晩)의 90평생 중 자유당 시절의 12년의 과오 때문에 나머지 80년 생애의 애국적 풍모를 일괄 매도하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며 김구(金九)의 70평생도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최근 친일파 청산론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역사 인식의 편협성과 안이성을 질타했다. 특히 그는 이런 역사 인식을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른 돌출적 역사 인식”이라면서 대학에서 역사가 선택과목으로 전락하고, 중등교육 현장에서 역사가 독립 과목이 되지 못한 현실이 그런 편협된 역사 인식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인 국사관을 세운 신석호(申奭鎬·1904∼1981)의 삶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신석호는 민족사 정립에 한평생을 바친 민족 지성이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감히 친일파라고 주제 넘는 폄칭을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 교수는 또 “요즘 일부 인사가 깊이 있고 객관적인 연구도 없이, 공선사후 정신으로 60평생을 일관한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를 친일파라고 무책임하게 매도하는 것을 보고 개탄과 한심함을 느낀다”고 썼다.
이 교수는 “성신학원을 설립 운영했던 이숙종이 자신이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이라며 ‘인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책이 오면 금고문을 열고 슬쩍 자리를 뜬다. 아마도 상당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은밀하게 지원하는 일이 인촌의 이중적인 삶이었다’고 내게 증언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1948년 반민특위 때도 인촌은 거명되지 않았다”며 “동아 조선 두 신문의 사주(창업자)를 친일파 명단에 포함시킨 데 대해 일설에는 두 신문이 현 정부 여당을 비판 성토하고 있어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공격 차원과 국민적 증오심 유발의 효과를 노려본다는 속셈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말이 사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사 연구’ 등 한국의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행적을 발굴한 연구서 70여 종 100여 권의 책을 발표한 원로학자로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연구실장, 성신여대 대학원장, 독립유공자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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