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대통령 특강이 名講義되려면

  • 입력 2006년 3월 13일 03시 04분


대한상공회의소는 2003년 3월부터 만 3년간 정부에 136건의 정책건의를 했다. 환경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의가 29건으로 가장 많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공정거래 관련은 11건이었다. 이 밖에 조세정책, 노동정책, 집단소송 등이 각각 10여 건이었다. 규제 완화 요구를 총정리한 ‘규제개혁 종합 건의’도 10여 건에 이른다.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난달 16일에 나온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공정거래제도 개선 방향’ 건의서를 보자. 건의서는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부실기업 회생에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를 촉진하기 위해 출자총액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건의서에 따르면 출자총액규제 적용 대상 13개 그룹 가운데 10개 그룹이 신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의 공개 매각도 외국 투기 자본의 잔치판이 될 판이다.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출자총액규제 때문이다.

대한상의는 6만여 회원 기업의 애로사항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정책건의 내용을 정한다. 변호사와 교수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책 대안(代案)도 제시한다.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해 주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건의서를 제대로 수용하는 사례는 적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까지 나서서 출자총액규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반대 입장이다.

정부가 소비자와 근로자의 이익을 무시하며 기업들의 정책건의를 다 수용할 수는 없다. 문제는 투자와 성장의 발목만 잡을 뿐인 규제조차 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만 생각한다”고 푸념했다. “정부가 외면하는 정책건의를 왜 하느냐”는 회원사도 많다. 그래서인지 정책건의는 2003년 67건에서 2004년 47건, 2005년 29건으로 줄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대한상의에서 대기업 및 중소기업인 350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대통령의 기업인 상대 특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주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 성장’이다. 신년 기자회견 이후 계속 제기해 온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업이 적극 나서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실업고교까지 찾아가 ‘양극화에 관한 정견발표회’를 여는 마당에 대통령이 이런 특강을 못할 이유는 없다. 또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대통령은 이번 특강에 참석하는 기업인들의 지루함과 괴로움을 헤아려야 할 것 같다.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도 2일 대한상의 강연에서 기업인 350여 명을 상대로 양극화 문제를 논(論)했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난 뒤 기업인들이 던진 질문은 중국의 추격, 환율하락 등 대외경제 변수에 관한 것이었다. 장관은 영어 강의를 했는데 기업인들은 수학 해법을 질문한 격이다.

대통령이 특강에서 대한상의 정책건의에 성의 있는 답변을 한다면 기업인들은 국내에 투자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는 성장잠재력 회복과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된다. 기업인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길은 투자를 많이 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특강 전에 대한상의 정책건의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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