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문건 유출 파문]대통령 바로 옆방서 샜다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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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대통령의전비서관실의 이종헌(李鍾憲·50) 행정관이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3급 비밀 문건을 유출한 당사자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22일 “문건 유출 과정에서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지만 이번 문건 유출이 여권 내 파워 게임과 연결돼 있다는 시각이 나와 주목된다. 권력의 핵심부에서 비밀문건이 새 나왔다는 점에서 청와대 내부의 허술한 보안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문건 최초 출처는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방=의전비서관실의 이 행정관에게 문건을 건네준 인사가 대통령 제1부속실 소속 이성환(李誠煥·30) 행정관으로 드러났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청와대 본관 안에서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있는 제1부속실은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건이 거쳐 가는 곳이자 대통령의 공식 비공식 일정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대통령비서실 내 핵심 기구다.

그래서 제1부속실장은 ‘문고리 집사’라고 불릴 정도로 핵심 실세로 꼽히지만 그만큼 다른 어떤 부서보다 철저한 보안이 유지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1부속실 소속 행정관이 비밀문건을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넘긴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건을 넘긴 부속실의 이 행정관에 대한 지휘 책임 문제는 조만간 비서실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이 행정관은 물론 문용욱 제1부속실장에 대한 문책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외교통상부에서 파견된 이성환 행정관은 현직 대사의 아들로 대통령 영어 통역을 맡고 있다.

▽‘자주파’와 ‘동맹파’의 파워 게임=이번 문건 유출에는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해묵은 갈등이 깔려 있다는 게 외교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988년 32세에 ‘늦깎이’ 외교관이 된 의전비서관실의 이종헌 행정관은 2003년 노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격 발탁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3년 말 외교부 북미3과 직원의 노 대통령 비판 발언이 외부에 알려져 윤영관(尹永寬) 장관이 물러나는 등 ‘징계 태풍’이 휘몰아치면서 외교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 간의 충돌이 표면화됐을 때 이 행정관은 외교부 조약과장이었다. 그는 현재 해외에서 근무 중인 K 외무관과 지난해 외교부를 떠난 K 씨와 함께 자주파의 핵심에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주파는 당시 문제가 된 대통령 비판 발언을 외부로 유출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란 게 외교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로 자리를 옮긴 이 행정관은 통일부 장관인 이종석(李鍾奭) 당시 NSC 사무차장의 실용주의 노선과도 대립했다는 것. 당시 그는 사석에서 “이 차장은 기회주의자이며 친미주의자다. 대통령 앞에서는 자주론자지만 돌아서서 하는 내부 회의에선 친미주의자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사석에서 이종석 장관을 ‘위장한 숭미(崇美)파’라고 공격해 온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과 이 행정관의 ‘코드’가 맞아 이들이 ‘이종석 낙마’를 위해 문건을 공개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 의원과 이 행정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날 때 자리를 함께했던 전 청와대 행정관은 예전부터 이 행정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최 의원은 이날 대정부 질문이 열리고 있는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은 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머물며 “자꾸 문건 유출이라는 부차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자꾸 손가락을 본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최 의원에게 문건을 필사하게 해 준 이 행정관은 사건이 문건 유출로 알려지자 ‘최 의원이 다른 경로로 문건을 입수한 게 아니냐’고 생각해 자백을 주저했다”며 고의적 유출 의혹을 불식하려 했다.

그러나 문건 유출이 지난달 2일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뒤 이달 초 이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사이에 이뤄진 점과 이 행정관이 최 의원을 만날 때 문제의 문건을 소지한 점 등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조직적인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부는 곧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종헌 행정관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미 17일 대기발령을 받은 이 행정관에게는 중징계(정직, 해임, 파면)가 내려질 게 확실하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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