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무위원 紙上청문회]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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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국회 정상화 합의에 따라 조만간 이종석(李鍾奭·48)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내정자를 비롯한 국무위원 5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청문회에 앞서 이들 장관 내정자의 자질과 성향 등을 지면을 통해 검증해 본다.

먼저 이 내정자가 쓴 ‘조선로동당 연구’(1995), ‘분단시대의 통일학’(1998), ‘북한-중국관계’(2000),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2000) 등 4권의 저서와 ‘북한지도집단과 항일무장투쟁’(1989) 등 다수의 논문, 칼럼을 통해 이 내정자의 대북관 및 한미동맹 등에 대한 시각을 들여다봤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 공산주의자 중 최고”=이 내정자는 저서 ‘분단시대의 통일학’에서 “북한 체면을 깎는 발언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신념’이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김대중(金大中) 정부에 이어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기권’ 내지 ‘투표 불참’ 등의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이춘근(李春根)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이 내정자는)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 등에서 북한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저서에서 이 내정자는 “북한 내 개방이나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인사들과 기관들의 입지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과감한 대북경협 및 투자를 역설했다. 실제 그는 지난해 5월 200만 kW의 대북 직접 송전계획을 담은 ‘대북 중대제안’을 입안했다.

‘가짜 김일성’ 논란을 학문적으로 잠재우는 데 크게 기여한 이 내정자는 “김일성은 동만(東滿) 일대를 배경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였다”(‘북한지도집단과 항일무장투쟁’)고 저술했다.

성균관대 박사과정 때인 1990년 3월 이 대학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는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 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라며 “미군의 한국 주둔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은 설득력 없는 변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북한을 ‘적대적인 형제’로 규정하며 북한이 현실적 군사적 위협 대상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한미동맹 갈등 및 변화 불가피=이 내정자는 미국이 국익의 관점에서 북한을 동아시아 및 세계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반해 한국은 민족문제로 다루려 하기 때문에 한미 간 갈등과 이에 따른 동맹관계의 변화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신의 저서 ‘분단시대의 통일학’에서 이 내정자는 “남한도 북한에 비해 월등한 체제능력을 보유하고, 중국 러시아와 교류 및 친선관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에만 집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의 추진 중단을 미국에 요구하고, 9월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데에도 당시 NSC 사무차장이었던 이 내정자가 깊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옥임(鄭玉任) 선문대 국제유엔학과 교수는 “미국으로부터 자주를 표방했지만 결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행태를 노출하며 명분도 실리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이 내정자는 군사력 증진보다 긴장상태 해소를 위한 남북, 북-미 간 근본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안보의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태우(金泰宇)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실장은 “안보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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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NSC 사무차장 재직중엔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지난해 4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재직 중 주한미군의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의 투입을 허용하는 ‘전략적 유연성’ 및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 문제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청와대 안팎의 386 인사를 중심으로 “미국에 지나치게 많은 양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와대가 경위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이와는 정반대로 “이 차장이 북한 입장만 생각하다 한미동맹 관계를 망가뜨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떠나려 한다”며 비판하는 측도 있었다. 자주외교를 중시하는 쪽과 동맹관계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은 셈.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실용적인 해법을 추구하는 그의 면모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내정자는 평소 입버릇처럼 “한미동맹은 우리에겐 운명이다. 그러나 운명이라고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건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지론을 펴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4월 청와대의 경위 파악 대상이 된 데는 그의 ‘직선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의견을 두루 수렴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NSC 사무차장 때도 주요 통일·외교정책 사안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으며 때론 그가 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계의 한 지인은 “고집이 센 게 정책목표 달성엔 긍정적이지만 독단으로 흐를 경우 통일부 운영뿐만 아니라 민감한 외교문제와 얽힌 남북협상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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