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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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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살던 3대 독자 정길이가 죽었단다. 기타를 치며 남한 노래를 ‘폼 나게’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길 건너 영국이 형제도 한날한시에 죽었단다. 과부로 영국이와 유복자인 영남이를 키우던 이웃 아주머니는 자식들의 시신조차 못 건졌다. 보조개가 예뻤던 성희는 애를 업고 배에서 일하다 다른 13명과 함께 빠져 죽었다. 그나마 우리 마을은 좀 낫다. 외지인이 많은 이웃 동네엔 두 집 건너 과부라고 한다.
내 고향에선 오징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오징어철인 6월에서 9월까지는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남자들은 모두 바다에 나간다. 지난해 여름 유별나게 많이 죽은 이유는 연해 오징어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고향에선 4∼5m 길이의 나무배에 서너 명이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카바이드 등불에 의지해 오징어를 잡는다. 몇 년 전만 해도 4시간 정도 나가면 됐지만 올해엔 10시간 정도 나가, 그것도 기름을 아끼느라 다음 날까지 잡고 들어온단다. 샛바람이 몰아치면 흰 갈기 날리는 파도에 작은 목선은 가랑잎이다.
남정네를 내보낸 아낙네들은 아침부터 부두에 나가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아무개 아무개가 못 들어왔다메…” 하고 쑥덕인다. 그러나 오후 들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배들이 나간다.
우리 고향은 잘산다고 소문난 곳이다. 오징어 떼를 잘 만나면 한여름에 벼락부자가 나오기도 한다. 북한의 다른 곳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다 보니 죽음과 이웃하면서도 매년 일확천금을 노리는 외지사람이 밀려들면서 고향 바닷가에는 오히려 집들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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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도 고향 사람들은 또다시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갈 것이다. 전남 해안에서 어선 침몰로 11명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내 마음은 곧바로 두고 온 고향으로 달려갔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서글픈 올해 소망이 튀어나왔다. “젠장, 올핸 고향 사람들 좀 고만 죽으쇼.” 이젠 동네 슈퍼에서 북한산 오징어만 봐도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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