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다시 ‘핵 줄다리기’]日 전문가 기고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합의와 결렬, 양쪽 모두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결과를 보니 역시 합의하는 것보다는 결렬시키는 쪽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피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스럽다.

마지막 순간에 요구 수준을 낮춰 합의를 가능케 한 쪽은 미국이었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문제에서 미국이 양보한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치명적인 사태는 아니다. 그보다는 북한 측에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의 완전파기를 명확하게 약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경수로 제공 문제를 적절한 시기에 토의한다’는 공동성명 문구에는 장래에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한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미국의 보수파에는 불만이 남겠지만 이는 외교적인 후퇴라기보다는 정상화라고 봐야 한다. 경수로 건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같은 합의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합의가 이뤄진 것은 북-미 양측 모두 회담 결렬 후 빚어질 위기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10월 10일의 북한 노동당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북한의 태도가 더욱 강경해져 전체적인 흐름이 ‘대화’에서 ‘대결’로 역류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북핵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되고, 대북 경제 제재 실시와 군사 긴장의 확대라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닥치게 될 것이다.

북한은 에너지, 식량, 외화 부족 등 경제적 곤란에 직면해 있다. 미국도 이라크 점령에 따른 혼란, 이란 핵문제, 허리케인 피해 등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새로운 골칫거리를 떠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목표와 원칙이 바스켓 방식으로 확인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시 방법과 구체적인 수순은 제5차 6자회담에서 협의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제 전반전이 끝나 눈앞의 위기를 피한 단계에 불과하다. 연내에 최종 합의를 달성하려는 시도가 있겠지만, 그 과정은 이번 회담 이상으로 힘든 협상이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이뤄진 ‘제네바 합의’의 확대, 혹은 개량판과 같은 합의를 상상할 수 있다. 실시 문제에 관한 합의에서는 핵의 완전폐기까지 2, 3년간의 여유가 주어지지 않을까. 즉각적인 완전 폐기를 실행에 옮기려 해도 북한은 ‘무장해제’라고 비난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 한국과 같은 핵 비보유국에 이는 반드시 못 받아들일 상황은 아니다. 완전 폐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핵 활동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엄격한 사찰 체제하에 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북-미 양국간이 아니라 다국간 합의인 만큼 북한이 합의를 어길 경우엔 다국간 공동 제재가 실행에 옮겨질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을 명확히 확인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6개국 공동성명은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을 재개할 명분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의 외교적 성과를 토대로 북한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3차 방북을 포함해 새로운 대일(對日) 접근책을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밝은 전망들도 핵 폐기의 실시 방법과 수순에 관한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실로 나타날 수 없다. 이미 북한은 합의 바로 다음 날 외무성 담화를 통해 경수로를 받기 전까지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혀 각국의 반발을 사고 있지 않은가.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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