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街 막전막후]‘집권 3년차’ 盧대통령 달라지나

  • 입력 2005년 1월 5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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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바뀌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정초부터 정치권과 관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먼저 달라졌다는 쪽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 초까지 이어진 4차례의 해외순방 이후의 변화를 예로 든다. 기업을 잇달아 극찬한 것이나, 최근 ‘관용의 문화’를 자주 강조하고 있는 점이 주요 논거다. 노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28일 출입기자들과의 송년만찬에서 “건강한 긴장관계뿐만 아니라 건강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에 대해 이전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 “그런 이론은 처음 듣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던 노 대통령은 4일 입법 행정 사법부의 차관급 인사를 초청한 신년인사회에서는 “내용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헌재의 판단이 큰 혼란 없이 수용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반응과 달리 크게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 본인은 최근 자신의 변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내가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잘 해보자”라고 말했다. 스스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싫지는 않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사석에선 “내가 왜 변했다고 그러느냐”며 가끔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히 주변에서 입맛에 맞게 ‘해몽’할 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체로 “노 대통령이 변했다기보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데 손을 드는 분위기다.

임기 초반에는 국회에서 여당이 소수당인 탓에 국정 운영이 워낙 팍팍했고 탄핵소추까지 당했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정치 환경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여유를 찾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요즘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오랜 세월 비주류로 지내온 탓에 지니게 된 특유의 공격적인 면모가 많이 사라졌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나보고 무조건 포용하라는 것은 원칙을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6개월 뒤인 4일에는 “상대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문화가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변화가 국정철학이나 주요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오히려 근본적인 국정운영의 철학이나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예를 들어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 이후 기업을 극찬했지만 이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집단소송제 도입 같은 기존의 대기업 정책 후퇴로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즉 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전보다는 더 애정을 보이겠지만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기본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경기 부양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 직후인 지난해 12월 초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집단이기주의 정책을 반영하려는 세력이 있다”면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외교 분야 역시 북핵문제나 대미관계 등 핵심 부분에 있어서는 “얼굴을 붉힐 때에는 붉혀야 한다”는 이른바 ‘자주외교’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다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해외순방 때 동남아와 남미, 유럽 등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두루 방문했다”며 “그랬기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큰 공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에 사상 유례가 없는 5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게 된 것도 노 대통령의 국제 감각에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원칙’의 변화가 아니라 ‘스타일’과 ‘상황’의 변화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는 분석일 듯하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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