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첫 예산안 처리 불발 우려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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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세밑 ‘4대 법안’ 타결에 실패함으로써 ‘강경 대치’라는 정국의 부담이 고스란히 을유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강경파들이 주도한 여야의 자존심싸움으로 인해 신년 벽두부터 여의도 국회에는 한파가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당장 열린우리당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있다. 한나라당의 육탄저지를 뚫고 경호권까지 발동하면서 밀어붙일 것이냐, 아니면 1월 8일까지로 돼있는 임시국회 회기까지 한나라당과의 재협상을 통해 타결에 나설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2005년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은 이미 오래전 여야 합의처리가 약속돼 있었던 사안들. 한나라당이 4대 법안과 두 현안을 연계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이것만큼은 임시국회 회기 중 어떤 일이 있어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의 태도도 이 대목만큼은 완강하다. 김 의장이 경호권 발동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측도 강하게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31일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이 오늘 통과되지 않으면 국가에 큰 어려움이 닥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예산안과 파병연장 동의안의 발목을 잡을 경우 적지 않은 역풍을 떠안아야만 한다. 특히 예산안 처리가 1월로 미뤄지는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다. 두 현안을 4대 법안과 분리해서 처리해 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향후 4대 법안 처리과정에서 ‘협상 카드’를 잃는다는 점이 내부의 고민이다.

4대 법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일단 여야가 합의까지 도달했던 신문법과 과거사법,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은 패키지 처리가 가능하다. 8일 임시국회 회기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진다면 얼마든지 처리 할 수 있다. 또 합의가 실패해 열린우리당이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을 단독 강행처리할 경우 이 법안들도 함께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의 반발로 인한 부담은 크겠지만 여야가 이미 합의한 사안인 만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국민연금법 방송법 등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루기로 하고 미룬 법안들은 임시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이마저 강행처리할 경우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엄청난 격랑 속에 휘말리게 된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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