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분식회계 2년 유예]재계 ‘줄 소송’ 급한 불 껐다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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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과 정부가 기업의 과거 분식(粉飾)회계에 대해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함에 따라 재계가 우려하는 과거 분식회계로 인한 ‘줄 소송’ 사태는 일단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의 이 같은 결정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줄 소송에 휘말릴 경우 치러야 할 비용과 혼란을 어떤 형태로든 수습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재계로선 과거 분식 행위에 대해 2년간의 시간을 벌게 됨으로써 이 기간에 회계 장부를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셈. 회계 연속성을 감안할 때 과거 분식과 현재 분식을 무 자르듯 한순간에 단절하기는 어렵지만 당분간 집단소송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정이 2년 유예로 결정한 것은 이를 3년으로 늘릴 경우 현 정부에선 증권 집단소송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3년간 유예할 경우 바로 대통령 선거가 있게 돼 재계가 정치권의 어수선한 틈을 타 또다시 로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거 때만 되면 유야무야 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정경제부는 3년 유예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날 당정회의에선 일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당정의 유예방침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밝혀져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또 한번 논란이 예상된다.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돼 있는 증권집단소송을 코앞에 두고 또다시 연기하자는 것은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 아니냐”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과거 분식과 현재 분식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들에 과도한 특혜를 베푼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일부 재정경제위 소속 위원도 “시행해 보고 나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고치면 될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재경부 측에선 “과거 분식회계를 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을 ‘개혁의 후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법 취지도 앞으로의 분식을 막기 위한 것이지 과거 문제로 벌을 주자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팽팽하게 맞섰다.

물론 과거 분식회계라 하더라도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은 현행처럼 가능하다. 이번에 법개정을 할 경우 적용이 제외되는 것은 집단소송에 한해서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를 통해 기업의 회계 분식을 적발해 냈거나 주주들이 민사소송을 통해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경우 기업이 과거 분식회계의 책임을 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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