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들 과거사 고백 시작되나

  • 입력 2004년 8월 1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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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과거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와 불법행위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먼저 용기 있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언급한 뒤 관련 국가기관에 연쇄적으로 파장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15일 오후 “과거 의혹사건에 대해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천명한 데 이어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도 16일 “필요하다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과거사 청산 기구 구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은 16일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민중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7개 시민 사회단체 대표들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비공개로 만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공동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단체 쪽 인사들은 “내부 논의를 거쳐 답변을 주겠다”며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는 “국정원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제3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된 뒤에 논의하자”며 이견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인권실천시민연대 등 일부 단체는 “국정원은 그동안 2기 의문사위 활동에 가장 비협조적이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대해선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국정원의 회동 제의에 아예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국정원의 ‘자기 고백’이 뜻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 진상규명 특위가 구성되기도 전에 국가기관간에 ‘과거사 고백 바람’이 불면서 과거사 정리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과 국방부가 선수를 치고 나선 것은 노 대통령의 15일 언급이 사실상 최고통치권자의 지시사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 수뇌부가 노 대통령의 언급 직후 속전속결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청와대와의 ‘주파수 맞추기’와 함께 자구책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국정원의 경우 이미 지난달 말부터 시민단체와의 공동 진상규명을 추진키로 한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 쪽과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진상규명 대상이 될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과거 의문사 사건에 +α 정도로 생각한다”면서 “시민단체와의 협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진상규명 대상 사건이 선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은 불법행위나 인권침해 사건이 아닌 만큼 이번 진상규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국정원 내에서는 “정권이 바뀌거나 정권 차원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국가정보기관이 푸닥거리의 대상이 되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검찰과 경찰은 “우리야 문제가 될 만한 과거 사건이 없는 것 아니냐”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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