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엄호하라"…한나라, 정체성공세 黨기구 설치키로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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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왼쪽)는 4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반국가적 사건이 많았다”며 “대통령과 여당은 진솔한 사과는커녕 색깔을 운운하고 케케묵은 과거사를 끄집어 내 국민과 야당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영수기자 kuki@donga.com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왼쪽)는 4일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반국가적 사건이 많았다”며 “대통령과 여당은 진솔한 사과는커녕 색깔을 운운하고 케케묵은 과거사를 끄집어 내 국민과 야당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영수기자 kuki@donga.com
《여야의 국가 정체성 공방이 갈수록 활활 타오르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나라당이 4일 국가 정체성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당 차원의 특별기구를 발족시키겠다고 밝혀 여야 공방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겨냥해 “유신시절 부친의 헌법 파괴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헌법 수호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朴대표 "경제침체 좌파적 정책 탓"▼

한나라당이 4일 국가 정체성 공세의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나섰다. 당 차원에서 이를 전담할 특별기구를 구성키로 한 것은 ‘사상전(思想戰)’에 앞선 전열 정비에 해당된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정체성의 붕괴는 곧 존재의 붕괴”라며 “한나라당은 정체성을 바로잡고 헌법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당내 기구 설치를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은 “내일(5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가칭 ‘헌법·정통성 수호 특별기구’ 구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특별기구 구성 추진은 정체성 공세 주체를 박근혜 대표 대신 당 차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다. 박 대표가 계속 전면에 나설 경우 박 대표를 겨냥한 여권의 역공이 거세질 수밖에 없어 정체성 문제가 자칫 인신 공격성 정쟁(政爭)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박 대표는 이날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있고 한국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좌파적인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케이블TV인 MBN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정한 개혁은 좌파 쪽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며 국민이 잘살게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진정한 개혁”이라며 현 정부의 정체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여권이 추진 중인 신문 개혁과 관련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유독 정부에 대한 비판이 강한 곳만 대상으로 개혁을 추진하면서 심지어 그것(해당 언론사)을 없애려는 게 아니냐는 느낌을 갖게 한다”며 “공정성이 지켜지려면 언론 스스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강한 야당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난 지금 할 말은 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하고 있다한나라당도 친북진상규명특별법이나 2002년 대선 정치공작규명특별법을 추진할 수 있지만 이를 안 하는 것도 상생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오른쪽)은 4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경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야당과의) 쓸데없는 말장난에 어울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야당과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우리당 "말장난 어울리지 않겠다" 무대응▼

여권은 4일 한나라당이 국가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 당내 특별 기구를 구성키로 한 데 대해 양동작전으로 맞섰다.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미경(李美卿) 한명숙(韓明淑) 상임중앙위원 등 주전파는 박근혜 대표를 정면 공격했다. 이 위원은 “유신 헌법을 만들어서 헌법 파괴를 한 것에 대해 반성도 없이 헌법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박 대표가 아버지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한 아무 비판도 할 수 없다면 정당을 끌고 갈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장영달(張永達) 이호웅(李浩雄) 의원 등 재야출신 의원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특별 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야 공격과는 달리 특별 기구 구성에 대한 적극 대응이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대신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 등 지도부는 이날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생산단지 내 한 전자업체를 둘러보며 오랜만에 민생을 챙기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신 의장은 전자업체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으며 앞으로 (야당과의) 쓸데없는 말장난에 어울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장인 조성래(趙誠來) 의원은 “박 대표를 직접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열린우리당 진상조사단이 박 대표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무슨 권력을 이용해 재산 환수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박 대표를 조사할 권능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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