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 사이트, 김일성 조문주장을 ‘오늘의 글’로 선정

  • 입력 2004년 8월 2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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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인터넷사이트(www.cwd.go.kr)가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패러디 사진을 게재해 물의를 빚은데 이어 국정홍보처 인터넷사이트(www.news.go.kr)에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 정부 인터넷사이트 운영과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정홍보처 사이트 ‘김일성 조문’ 글 논란=국정홍보처는 부처 홈페이지인 ‘국정브리핑’에 지난달 30일 ‘넷포터’(네티즌과 리포터의 합성어) 게시판에 “우리 민족끼리 6·15 정신 되살리자”라는 글을 올렸다.

필자는 국정홍보처가 인터넷사이트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뽑은 4000명의 네티즌 가운데 한 사람인 인모씨. 그는 이 글에서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단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하루라도 빨리 꾸려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예의와 염치를 존중했는데, 10년 전 ‘조문파동’을 거치면서 남북위기를 심화시킨 아픈 경험은 같은 민족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글은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이자 제국주의의 전형이므로 열린우리당의 ‘북한인권법 통과에 관한 결의안’에 발맞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의 체제를 부정하고 일시적인 경제난관을 이유로 탈북한 사람을 남쪽에서 적극적으로 입국을 추진한다면 서로 간 체제에 대한 인정을 명시한 6·15 공동선언 위반이 된다 △정부는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냉전수구세력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이 글에 대해 실무자(7급 상당)가 게시판에 올리기로 결정했고 기사를 심의하는 데스크(편집책임자) 격인 심의위원은 이 글을 그날 올린 글 가운데 가장 좋다는 ‘오늘의 넷포터’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 인병택(印炳澤) 국정브리핑 팀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실무자 판단에 따라 이 글을 채택했지만 국정홍보처나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예고된 실수’인가, 시스템 부재인가의 논란=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잇따른 인터넷 게재 파문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박근혜 패러디’나 ‘김일성 조문 촉구’ 의견이 정부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 떠올랐고 실무자가 좋은 내용이라고 편집까지 해서 올린 점에 비춰볼 때 여과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 부재’의 산물이란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청와대나 국정홍보처가 지나치게 ‘개혁 코드’를 강조하는 바람에 이 같은 무리수가 속출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이와 함께 다른 정부부처에선 별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와 정부를 홍보하는 국정홍보처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는 것은 공직기강 해이가 그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편 한나라당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부가 인터넷 리포터를 앞세워 김일성 조문을 정당화하고 북한 인권과 탈북자 보호를 거부하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친북 반미’ 견해가 담긴 글이 국정홍보 매체에 실린 경위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국정브리핑’에 게재된 국정넷포터 글 주요 내용▼

제목 :‘우리 민족끼리’ 6·15정신 되살리자

(전략)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단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하루라도 빨리 꾸려서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한다.

(중략) 미 의회의 ‘북인권법안’ 통과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이자 제국주의의 전형이다. …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북인권법안 통과에 관한 결의안’에 발맞춰 적절한 조치를 해야 마땅하다. 모든 문제를 한미공조 틀에서 고민하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 민족공조의 틀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중략)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에 항상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고 동시에 단순한 인권적 접근이 가지는 폐해가 있다. 북의 체제를 부정하고 일시적 경제난관을 이유로 탈북한 사람을 남쪽에서 적극적으로 입국을 추진한다면, 서로 간 체제에 대한 인정을 명시한 6·15공동선언에 대한 위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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