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내일은 左腦를 작동시키자

  • 입력 2004년 4월 13일 18시 46분


정치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서양의 정치학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실천력을 지닌 철인(哲人)이어야 한다. 공익을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하는 게 정치인의 숙명이다. 동양의 정치학 이론도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공맹(孔孟)은 인(仁)으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역설하지 않았는가. 정치학 이론대로라면 위대한 인물이 아니고서는 감히 정치인이 될 수 없다.

▼‘理性의 뇌’로 냉정한 분석 필요 ▼

경제학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경제학은 인간이 개인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정치인이 비록 순수한 열정을 갖고 정치에 입문한다 해도 결국엔 명예심, 권력욕 등을 좇기 쉽다고 본다.

정치학에서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정치인을 유권자의 이익을 위해 대신 활동하는 대리인으로 본다. 주인은 어디까지나 시민이다.

경제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 공공선택이론에 따르면 정치인과 관료는 입으로는 “공익을 위해 일한다”고 외치지만 사익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이 이론은 정치학의 정치인관(觀)을 낭만적 시각이라 지적한다. 낭만적이라면 영어로 로맨틱(romantic) 아닌가. 사랑하는 감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제 눈에 안경이라고 현실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이론을 체계화해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부캐넌 교수는 “정치학은 그 근본적인 가정을 바꿔 ‘낭만을 배제한 현실의 정치(politics without romance)’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선택이론학파의 눈에 비친 정치학엔 이상주의(理想主義) 색채가 진하다. 정치인은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는 이상주의자이거나 그 꿈이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선동가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인간 심성 깊숙이 자리 잡은 이상향(理想鄕)에 대한 갈망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약속이 남발되고 이를 추종하는 사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20세기 현대사에서 ‘사회주의 실험과 실패’를 통해 이를 확인하지 않았는가.

인간 두뇌는 좌뇌, 우뇌로 나뉘어 각기 다른 역할을 맡는다. 좌뇌는 이성(理性)을, 우뇌는 감성을 관장한다. 어느 저명한 정신병리학자는 “한국인은 좌뇌에 비해 우뇌가 지나치게 발달한 측면이 있다”면서 신용카드 남용 사례를 들었다. 카드를 긁으면 갚을 사람이 자기 자신인데 어떻게 대책 없이 그렇게 마구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충동에 의해 행동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우뇌의 힘으로 역사적 위업을 쌓은 바 있다. 몇십년 만에 최빈국 대열에서 빠져나와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고 민주화를 이만큼 이룬 것이 우뇌의 열정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선거에서는 좌뇌가 더 활발히 작동해야 한다.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 유세에서는 흔히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이벤트성 감성정치가 판을 친다”는 비판이 나오니 좌뇌의 힘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경제 살리는 성실한 대리인 뽑아야 ▼

일자리 창출, 노인 대책, 교육 여건 개선, 임대주택 건설 등에서 장밋빛 정책이 각 정당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를 실현하려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그 돈은 누가 대나? 법인세, 소득세는 낮춘다 하는데…. 나라 곳간이 텅 비어 이런 공약을 지킬 수가 없음을 좌뇌로 곰곰 따져보면 알 수 있다. 허황된 ‘위대한 인물’보다는 투표권자의 작은 소망이라도 이뤄줄 수 있는 성실한 ‘대리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15일, 투표장에 갈 때는 주민등록증과 함께 반드시 갖고 갈 게 있다. 바로 우리 머릿속의 좌뇌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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