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검문중 “한국인” 밝히자 “내려라”

  • 입력 2004년 4월 9일 02시 17분


정부는 한국인 7명이 이라크에서 억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8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이 곧 무사히 풀려났음에도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억류 상황=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 소속 허민영 목사 등 일행 8명은 7일 오후 10시반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바그다드로 향했다.

이들은 모술 근교 ‘니느웨’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선교 신학원 개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밤새 차량을 몰고 이라크 국경을 넘었고, 12시간가량 달려 8일 오전 10시 반 바그다드 외곽 150km에 접근했다.

이때 고속도로를 벗어날 무렵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장세력의 검문을 받았다. 이들은 ‘코리아’라고 반복해 외치며 여권을 보여줬지만, 무장세력은 이를 무시한 채 일행을 차에서 끌어내리고 여권을 빼앗았다.

이라크인 운전사는 일행 중 7명이 차에서 내려서 무장세력의 차로 옮겨지는 사이에 인천 성문교회 김상미 목사(여)를 태운 채 급히 차를 몰고 현장을 탈출했다. 김 목사가 차량의 가장 안쪽에 타고 있어 무장세력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탈출 후 현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난 지 1시간쯤 뒤 민간인 복장의 무장군인의 수가 늘어나더니 검문을 했고, 총 로켓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석방 상황=한국인 목사들을 억류했던 무장세력들은 이들이 한국인임을 확인한뒤 “미국 스파이인지알고 당신들을 붙잡았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장세력들은 “안전지역까지 데려다 주겠다. 걱정하지 마라. 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말한것으로 전해졌다.

▽교민 보호대책=이번 사건은 이라크 추가파병을 앞두고 치안이 악화된 상황에서 느슨한 교민보호책과 정부 지침을 무시한 민간인들의 무모한 방문 시도가 만든 합작품이란 지적이다.

허 목사 일행은 출발 하루 전인 6일 요르단에서 한국대사관에 “이라크로 가겠다”고 신고했고, 대사관측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그러나 허 목사 일행은 출발 당일인 7일에는 “요르단과 주변의 이스라엘 같은 곳을 둘러보고 돌아가겠다”고 대사관에 거짓 신고한 것으로 외교부는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들 일행의 서울 가족에게 이라크 육로 입국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은 이라크 외교부와 미 연합군 임시 행정처(CPA)에 허 목사 일행의 소재파악과 안전조치, 석방을 협조 요청했다.

▽향후 파장=정부는 현재로선 “파병 원칙엔 변함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2명이 한때 억류된 사건이 빚어진 지 이틀 만에 7명이 억류됐다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하자 추가파병을 앞두고 국내여론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파병 재검토 필요성’을 보도했고,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선대본부장은 8일 오후 10시반경 외교부를 방문해 반 장관을 만나 ‘이라크 파병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따라서 파병지역 변경을 위한 선발대가 9일 이라크로 출발하는 등 임박한 추가파병을 둘러싼 논란은 이날 납치된 7명이 무사히 귀환되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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