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훈/출산지원, 턱없이 부족하다

  • 입력 2004년 3월 28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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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각계각층에서 출산 장려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1995년 72만명에 달했던 신생아 출산이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2002년 49만명 수준으로 주저앉자 저출산 문제는 단번에 고령인구 증가에 대한 대책과 함께 국가적 과제가 된 것이다.

▼저출산 대책없는 건강보험 개선안 ▼

그 뒤 각계 전문가들은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사회·의료·복지의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여러 해결책을 내놓았다. 현재의 저출산 위기는 만혼(晩婚) 풍조, 독신 여성의 증가, 육아 및 탁아시설의 부족, 과중한 양육비 교육비 부담 그리고 64만쌍에 이르는 불임부부 등과 같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공론화 과정 초기에 출산장려금 지급안 정도를 선보였던 정부는 ‘안이한 상황인식’이라는 비판이 일자 최근 셋째 자녀의 분만비용을 전액 건강보험에서 지급하고, 둘째 자녀 분만비용의 본인부담률을 20%에서 10%로 낮추는 등 나름대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만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이런 대책들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전시행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참여복지 5개년 계획 가운데 건강보험 개선안에 포함된 ‘경증 질환에 대한 본인 부담금 인상안’으로 오면 더욱 커진다. 경증 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여기서 확충된 재정을 희귀·난치병 치료에 전용하겠다는 정부안은 의료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저출산 대책과 관련해 정부의 미숙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저출산 위기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과중한 양육비 부담을 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은 2003년 현재 우리나라 가정에서 자녀 한명을 낳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비용이 월평균 82만5000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부부에게 아이를 한명 더 낳으라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망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정부안은 인후염이나 장염과 같은 경증 질환 진료가 대부분인 소아의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인상하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문턱이 닳을 정도로 병의원에 다녀야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젊은 엄마들의 절절한 마음을 과연 알고나 있는 것일까?

물론 저출산 위기가 정부의 처방만으로 단박에 해결될 리 없다. ‘자기실현’을 우선시하는 젊은 부부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려면 시간도 상당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적 사회적 난제를 풀기 위해선 땜질식 대증요법이 아니라 임신·출산·육아·교육 문제에 걸친 정부의 과감한 인식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 그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1970∼1980년대에 구미 선진국이 그랬던 것처럼 출산 장려를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실질적이고도 종합적인 출산장려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소아환자 본인부담금 국가 보조를 ▼

정부 당국은 그 현실적인 방안의 하나로 현재 논란거리인 본인부담금 인상안에서 소아 환자를 제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출산과 양육이 사회적 문제임을 직시하고, 차제에 일본 대만처럼 본인부담금을 낮추거나 전액 국가가 보조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책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 같은 가시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내놓은 뒤에야 젊은 부부들에게서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인간이 누리는 참다운 행복의 하나’라는 인식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저출산 위기, 이제는 정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장훈 대한소아과학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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