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어떻게 봐야하나]“민의무시 數횡포” “대통령 견제도 민의”

  • 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03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야권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3권분립에 입각한 정당한 행동이자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은 “수적 우위를 내세운 야당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감행한 의회쿠데타”라며 역시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우고 있다. 본보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소장 박찬욱 교수)와의 공동기획 ‘2004 총선-정치 틀이 바뀐다’ 시리즈 두 번째로 ‘4·15총선에서 탄핵이 갖는 정치적 의미와 영향’을 쟁점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국회의 국민대표성과 대통령의 국민대표성 충돌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 친노(親盧) 세력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국회가 탄핵할 수 있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학자들 대부분은 “국회도 국민의 대표기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대통령도 국회도 모두 국민 손에 의해 뽑힌 만큼 둘 다 대표성을 갖고 있기에 합법적 절차를 거친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정당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국회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이미 헌법에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가결 요건을 재적의석수의 3분의 2로 엄격히 한 것이나 탄핵심판권을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에 맡긴 것은 국회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탄핵제도는 ‘하원 발의, 상원 심판’으로 의회에서 시작해 의회에서 탄핵절차가 종결된다.

이번 탄핵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민의(民意)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도 상당수 학자들은 민의의 절대적 구속성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포괄적으로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의원 개개인의 독자적 소신과 양심에 따라 사안을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회의 판단이 민의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함으로써 의회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서 주권자에 대한 대의기구의 책임성을 확보하는 정상적 방식이라는 것.

따라서 헌재나 유권자는 정치인들이 구호로 내놓는 ‘헌정질서 수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게 상당수 정치학자들과 야당의 입장이다.

▽다수결 원칙과 소수 의견 존중의 충돌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권 3당은 “합법적 절차를 방해한 열린우리당이야말로 반민주적 작태를 보인 것”이라고 비난하고, 열린우리당은 “숫자만 많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발상이야말로 반민주적인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공감할 수 있는 의사결정 원칙이 마련되지 않는 한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더라도 똑같은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정치학자들 중에는 일단 “열린우리당이 물리적으로 이를 저지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다.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토록 돼 있는 법절차는 존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리적으로 본회의 진행을 막은 것은 명백히 반(反)의회주의라는 야권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만 국회 본회의 과정 자체는 민주적 의사진행의 원칙을 어긴 측면이 있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견해다. 열린우리당과 입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다수결의 원칙만을 강조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장과는 달리 토론과정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소수파의 의견 개진 기회와 절차가 보장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탄핵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은 소수의견의 보호가 의회민주주의 또 다른 강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맹목적 다수결 원칙에만 매달려 의회정치를 파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탄핵안 의결을 국민이 비판하는 것 또한 야당이 총선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발의 단계나 발의 후에도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나 선거전략 차원에서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권위주의 정권 시절 다수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던 ‘날치기’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탄핵의 정치학과 총선 표심

탄핵은 미국에서도 ‘다른 방식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의 일종으로 보편화된 개념이다. 이는 선거라는 정상적 무대를 통해 상대 정치세력을 심판하는 게 아니고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국정조사나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상대 정치세력을 패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년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전략을 추구했으며. 선거를 앞두고 그 결정판을 선보인 셈이다.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시절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의 좌파 성향을 부각시키기 위해 ‘국가주도형 의보개혁’을 쟁점화 했고, 르윈스키 스캔들의 위증 혐의로 탄핵을 추진했다. 그러나 9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역풍을 맞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권자들이 탄핵사유 자체에 주목한다면 여론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장처럼 노 대통령의 선거 개입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친(親)탄핵 대 반(反)탄핵’으로 여론을 형성, 노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이라는 암초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자칫 친노 대 반노간의 대립으로 변화되면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대표 집필=안병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탄핵안 의결과 관련한 여야의 헌법정신 해석 비교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쟁점열린우리당
법 어긴 대통령 바로잡는 게 헌정질서 수호헌정질서국민 의사 반하는 탄핵안 폐기가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것
헌법과 국회법 따른 탄핵안 표결을 가로막은 것이 반민주민주절차다수 의석의 힘으로 소수자의 반대를 묵살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반민주
국회의 대통령탄핵권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분립 원리에 따른 것 3권분립의회가 대통령 발언을 과잉해석해 탄핵안 내는 것은 국정발목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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