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탄핵정국’ 문제는 기업투자

  • 입력 2004년 3월 14일 19시 46분


탄핵 정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불확실성의 증가를 걱정하고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식의 진단이 경제 현실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차피 불확실성이 커서 소비와 투자가 움츠리고 있던 마당에 이번 일로 당장 더 나빠질 것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소극적으로 현상 유지하는 대행체제 하에서 일관성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라고 본다. 정책의 일관성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흐트러질 가능성이 더 크다.

▼경제, 당장 더 나빠지진 않을 듯 ▼

탄핵 사태의 경제적 여파를 제대로 알려면 지금 겪고 있는 경기침체의 원인부터 따져봐야 한다. 우선 소비의 경우 가계부채가 많기 때문에 소비역량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빚이 많다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일자리와 미래소득에 대한 기대만 형성되면 소비는 살아날 것이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불안은 사람들에게 별로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이번 일로 좀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바닥권인 소비가 더 나빠질 정도로 심리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기업투자다. 그런데 이것도 정국이 어지러워졌다고 당장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투자 관련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현재의 설비투자 침체가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 온 장기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의 요체 역시 구조적 성격을 지닌다. 우선 자금 조달의 측면에서 과거처럼 은행 차입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이 커진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은행 통제를 통한 정부 주도의 자금배분 방식을 대체할 정도로 금융시장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도기적 불확실성이 큰 것이다.

취약한 금융기반은 약간의 충격에도 흔들리기 쉽다. 지금은 해외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상승국면에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을 덜 수 있지만 외부 환경은 언제 달라질지 모른다. 그만큼 금융시장의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고 주식시장의 성숙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정착시킬 필요가 큰 것이다.

금융시장의 미성숙과 함께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분은 전반적인 기업정책의 불확실성이다. 외국자본은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우리는 아직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본의 국적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식의 유치한 논쟁이 쏟아지고 출자총액제한과 같은 임시방편의 규제가 기업정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쟁 계속땐 성장잠재력 꺾일 것 ▼

결국 기업투자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려면 금융과 기업개혁의 청사진이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정권 초기에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런 구조적 사안들이 정권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논의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만일 국내 정쟁이 파국으로 치닫거나 해외 경제여건이 변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금융시장이고 이는 투자, 나아가 수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나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의 성장잠재력 자체가 꺾여버릴 파국의 상황이 올 수 있다.

탄핵 자체가 당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지만 이로 인한 정쟁이 길어지면 경제문제, 그중에서도 구조개혁에 대한 관심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자각증세가 없는 암이 치명적이듯 어느 날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정치인들이 민생을 죽이는 주범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