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배세력 변화 위한 遷都’인가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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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수도이전은 한 시대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은연중 이를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는 천도(遷都)’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다. 역성(易姓)혁명을 통해 왕조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고, 수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바뀌는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청와대측은 ‘역사에 나타난 천도의 의미’를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 문제를 단순히 대선 및 총선 전략의 하나로 접근해 온 게 아니라 역사 및 가치 전복과 인적 청산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을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은 정권 교체를 왕조 교체와 동일시하는 듯한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국가백년대계를 총선 전략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5년간 국정운영을 위임받은 자리이지 봉건왕조의 절대군주가 아니다. 또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후보 때 내세운 공약을 국민이 모두 승인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독단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민통합과 참여정치를 누누이 강조해 왔으나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유례없이 깊어졌다. 이 마당에 수도이전에 대한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상과 언사는 자칫 국민을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새로운 세력과 낡은 세력으로 나눠 갈등을 조장하게 될 우려가 높다. 대통령의 언급대로라면 다음 지배세력은 또 새로운 천도를 도모하고, 국민은 매번 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 말인가. 수도이전이 특정 정권,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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