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의장실 도청’ 호들갑…경찰 "소형 녹음기일뿐…"

  • 입력 2004년 1월 9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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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의장실에서 발견된 도청장치라고 경찰이 9일 공개한 소형 녹음기.
열린우리당 김원기 상임의장실에서 발견된 도청장치라고 경찰이 9일 공개한 소형 녹음기.
열린우리당은 9일 때아닌 도청 소동으로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웠다.

이재정(李在禎) 총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확대간부 회의에서 “어제 여직원이 김원기(金元基) 상임의장실을 정돈하던 도중 의장 탁자 밑에 청테이프로 부착된 가로 3.6cm, 세로 10.2cm 크기의 도청장치를 발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위원장은 “문제의 도청장치는 소리가 나면 자동으로 녹음이 되도록 설계된 고성능 녹음장치로 지난해 12월 29일 이후 계속 작동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당 지도부는 즉각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당 차원에서 강력 대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동채(鄭東采) 홍보위원장은 즉각 “도청의 성격이 짙다”며 “이는 음습한 구태정치와 공작정치의 한 단면이다”고 흥분했다. 일부 당직자는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며 총선과 연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당 관계자들이 내놓은 ‘도청장치’의 사양은 최장 8시간 이상 녹음이 가능한 S사의 보이스펜(voicepen·만년필처럼 생긴 녹음기)으로 도청에 필수적인 원격조종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 당 관계자들은 “8일 신고를 받은 경찰이 ‘사양으로 볼 때 작정하고 도청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물건을 김 의장 책상에 붙여놓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 범인을 잡을 때까지 언론발표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안다”며 ‘정치공작’ 의혹 발표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오후 2시쯤 한 지방지의 김모 기자(47)가 “특종을 잡으려는 욕심에 내가 녹음기를 부착했다”고 ‘자백’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진기자도 겸하고 있는 그는 “한나라당 민주당까지 출입하다 보니 경황이 없어 녹음기 설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녹음기를 활용한 일도 없다”며 사과했다.

이에 이평수(李枰秀) 공보실장은 “일단 경찰의 진상규명 절차를 밟고 해당 기자의 출입처 변경을 소속사에 요구하겠다”면서도 “치열한 취재경쟁 속에서 일어난 행동으로 보이고 ‘자수’를 했기 때문에 경찰이 선처했으면 한다”고 논평했다. 경찰은 자진 출두한 김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및 현주건조물 침입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런 일이 범죄가 될 줄은 몰랐다. 순전히 취재 목적으로 한 행동이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우리당측이 김씨에 대한 선처를 요청함에 따라 검찰 지휘를 받아 김씨를 불구속 입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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