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홍위병이 나서야 할 재신임인가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32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에 앞장섰던 명계남씨가 엊그제 한 집회에서 보여준 언행은 향후 재신임 정국에서 전개될 선동정치의 불길한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대선 유세 당시의 노란색 복장을 다시 차려입은 명씨는 이른바 ‘개코(개혁코드)’의 대결집을 주장하면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전원이 노 대통령의 ‘홍위병’이 되자고 촉구했다.

그는 청중에게 “젖 먹던 힘을 다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해야 한다”면서 “유권자 설득을 위해 나도 총선 경선에 출마할 것이며 12월까지 또박또박 악랄하게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외곽세력의 핵심이 노골적인 선동가로 나서 서슬 퍼런 전투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내전(內戰)에 임하는 듯한 이런 언행을 용인해도 될까.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명씨 등이 앞으로 재신임 쟁취를 위해 우리 사회에 휘몰고 올 ‘광풍’이 더욱 걱정스럽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제시한 것이나 지금까지 명씨의 행적을 감안할 때 이번 발언이 ‘과장된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언이 노 대통령과 어떤 연관이나 교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된다. 노사모와 거리를 두겠다던 노 대통령이 재신임 선언 직후 광주 노사모 회원들에게 친서를 보내 애정을 표시하고, 명씨가 최근 노사모에 재가입한 일련의 움직임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노사모가 명씨의 요청대로 ‘홍위병’ 집단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노 대통령과 친노(親 盧)세력들이 재신임을 얻기 위해 노사모 같은 외곽 조직을 이용하고 선동적 대중정치를 꾀한다면 그것은 더할 수 없는 잘못이다. 그런 행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민주사회를 후퇴시킬 뿐이다. 재신임을 얻기 위해 홍위병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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