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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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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날 회견 문답.
―재신임을 받겠다는 결심을 언제 했나. 재신임 방법을 공론에 부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 수 있나.
“인도네시아에서 최도술 비서관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오래 생각하고 결심했다. 공론에 부치자는 것은 모호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자 한 뜻으로 말한 게 아니고, 실제로 재신임 방법이 무엇인지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제도가 애매하다. 말은 중간평가, 재신임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방법은 적절한 법적 절차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좀 더 국민의 공론을 모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 전 비서관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언제 알았는가.
“검찰 수사가 신뢰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 모르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축적된 국민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는데, ‘국민의 불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동안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수사 결과가 어떻든 국민이 나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권력적 수단을 포기했다.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밑천일 뿐이다. 그 문제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에 이제 국민에게 겸허히 심판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상태로 어정쩡하게 1년, 2년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국민에게 상당히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가(可)든, 부(否)든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신뢰에 관해서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자부심이 훼손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나.”
―검찰 수사결과 최 전 비서관의 개인비리로 규정될 경우에도 재신임을 받겠다는 말이 계속 유효한 것인가.
“수사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더라도 국민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국민은 의혹이 없는 깨끗한 대통령을 원하고, 적어도 의혹이 있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사면받은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정치개혁은 지금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는 국가적 과제인데, 대통령이 어정쩡한 태도로 ‘나는 관계없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면 국민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결코 이것이 무모하거나 경솔한 선택이 아니라 달라진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국정혼란 불가피… 어깨 무거운 高총리▼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공개된 직후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내놓은 제1성은 “국정 운영에 추호의 차질 없이 내각을 이끌어가겠다”는 것이었다.
고 총리는 10일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등 각계원로의 조언을 듣고, 11일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 개최를 제외하면 나머지 일정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선 이 같은 초기대응은 역설적으로 국정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반증이란 견해가 우세했다.
이영탁(李永鐸) 국무조정실장은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업무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국론분열과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혼란의)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이 올스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제 기능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느냐 마느냐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관심은 ‘행정의 달인’으로 통하는 고 총리가 노 대통령의 ‘재신임 레임덕’ 상황에서 실질적인 책임총리로서의 역할을 해 낼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고 총리도 “무거운 부담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리실 주변에선 총리가 대국민 담화 등의 방법을 적극 활용해 국정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정치적 기반인 여당(與黨)이 사라진 상황에서 4당을 상대로 정책설명을 해 온 마당에 이제는 대통령의 ‘반쪽 부분’까지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권한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현 상황에서 고 총리가 내각을 장악하고, 정치적 지지자 및 반대자를 설득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 대통령이 메가톤급 발표를 앞두고 고 총리에게 상의는커녕 사전통보조차 없었다는 점은 고 총리의 국정장악 행보에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고 총리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사전에 상의를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편 총리실측은 “재신임이 통과되는 상황에선 총리가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상상도 하기 싫다”며 답변을 피했다. 총리실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신임불가’ 결론으로 내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인지 의심스럽다”며 “설령 재신임 국민투표가 부결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내각은 자기 자리를 지키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한편 총리실 일각에선 한국사회에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상당히 깊게 정착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내각은 그로 인한 행정적 공백이 없게 국정을 무난히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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