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入國 ‘보이지 않는 손’ 작용했나…'기획입국설' 제기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57분


1994년 7월 20일 김일성 주석 추도식에 참석한 송두율씨(아랫줄 왼쪽에서 네 번째 점선 안). 이 사진은 당시 노동신문(7월 21일자)에 실렸다. -연합
1994년 7월 20일 김일성 주석 추도식에 참석한 송두율씨(아랫줄 왼쪽에서 네 번째 점선 안). 이 사진은 당시 노동신문(7월 21일자)에 실렸다. -연합
《재독 학자 송두율씨의 귀국 배경에 과연 정권 차원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곳곳에서 작용한 것일까.

송씨는 2일 기자회견에서 ‘청와대나 국가정보원과의 사전교감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40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무슨 교감이 있었겠느냐”며 ‘본인의 결단’임을 주장했고, 정부도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국가정보원 박정삼(朴丁三) 2차장이 송씨가 귀국하기 1주일여 전인 지난달 13일부터 15일까지 베를린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고, 이종수(李鍾秀) KBS 이사장도 지난달 초 베를린을 방문해 송씨의 귀국을 설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KBS이사장 송두율씨 입국 적극 개입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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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나라당 정보위 소속 홍준표(洪準杓) 의원 등은 3일 이런 정황을 대며 ‘기획 입국설’을 강력히 제기했다. 입국 전 사전조율이 있었으며, 사법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언질을 받고 송씨가 입국 결심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차장의 베를린 방문과 관련, 국정원은 “2차장이 지난달 13일부터 20일까지 해외파견 요원들에 대한 교육 및 지휘부 격려차 독일과 이집트 등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나, 송씨와의 만남은 없었다”고 관련설을 부인했다. 송씨도 “(박 차장과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도 “기획 입국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송씨 귀국을 추진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나병식 이사에게 송씨가 귀국하면 골치 아플 것 같으니 안 들어오는 게 좋겠다는 개인 의견을 전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은 송씨 귀국 전 최병모(崔炳模) 민변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조사는 불가피하며 사법처리 불가 약속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송씨는 아무런 ‘신변 보장’ 없이 입국을 강행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송씨는 귀국 전 기자들과 만나 “내 문제가 청와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당시 그는 박 차장과의 친분도 언급했다.

또 사업회측은 지난달 24일 국회 행자위 국감 답변에서 “국정원이 ‘사업회 일에 협조하겠다. (송씨를) 조사할 수 있으면 입국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어 국정원이 어떤 형태로든 송씨 귀국 과정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업회측이 당초 송씨 ‘귀국 사절단’으로 서강대 박호성(朴虎聲) 교수 등을 베를린에 보냈다고 밝히면서도 이종수 이사장의 동행 사실을 숨긴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송씨와 가까운 서울대 김세균(金世均) 교수는 “옛날 같았으면 안 들어왔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됐고 사회 인식이 바뀌었다는 믿음을 갖고 입국한 것”이라고 송씨의 순수한 동기를 강조했다.

아무튼 송씨 입국을 놓고 정부 내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특히 이종수 이사장은 어떤 자격으로 베를린 방문에 동행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이 말끔히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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